『이순신』은 이광수가 1931년 6월 26일부터 1932년 4월 3일까지 『동아일보』에 총 178회에 걸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연재가 끝난 직후인 1932년 9월 20일 대성서림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이 작품을 연재하기 전 이광수는 1931년 5월 21일부터 6월 10일까지 「충무공 유적 순례」라는 기행문을 『동아일보』에 연재했는데, 이 기행문과 소설은 당시 동아일보사가 주도한 '이순신 유적 보존 운동'의 일환으로 그 의미를 갖는다. 독자의 열띤 성원이 뒷받침되어 운동과 소설이 성공하는 드문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순신」 연재는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펼쳐진 민족문화 보존 운동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순신의 직계 유족이 생활난으로 빌려 쓴 은행 빚 때문에 이순신 묘소와 주1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동아일보』 기자의 단독 특종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은 『동아일보』의 지면을 달구었고, 독자들의 반응도 유례없이 빨랐다. 3일 만에 성금과 응원의 메시지가 답지한 것이다. 『동아일보』 사주인 송진우는 이 흐름에 기대어 당시 편집국장이던 이광수를 현지로 급파해 기행문을 짓게 하는 한편, 역사소설 「이순신」을 연재하게 했다. 이는 독자들의 관심과 열기를 이어가는 데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이에 힘입어 ‘이순신 유적 보존 운동’은 실제 성과를 거두었으며, 민족 문화의 보존과 기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었다. 이광수 개인으로서도 민족주의자의 위상을 재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갖는 의미는 크다.
작품의 서사 시간은 신묘년 정월 새 수사(水使) 이순신의 주2에서 시작해 마지막 해전에서의 죽음과 유해 안장으로 끝난다. 전라 주3의 새 수사 이순신은 도임한 다음 달에 쇠못을 두른 주4 형태의 거북선을 진수한다. 도요토미 주5의 명으로 왜군은 파죽지세로 조선을 침범해 들어온다. 부산과 동래 싸움에 이어 상주와 충주 싸움에서 조선군은 참담하게 패배하고 만다. 선조는 성난 백성의 아우성을 외면한 채 평양을 거쳐 명나라 망명을 염두에 둔 의주까지 피신한다. 조선군이 주6에서 연전연패함에 비해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옥포 · 당포 · 한산도 · 안골포 · 부산 등지에서 연전연승한다. 한산도와 부산 싸움에서의 승리 이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여기에 명군의 원조가 더해져 승기를 잡는다. 하지만 정유년에 재침입한 왜군과 맞서 싸우던 이순신은 원균의 모함으로 옥에 갇힌다. 원로대신 정탁(鄭琢)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그는 석방되어 주7 된다. 원균의 칠천도(漆川島) 패전 후 이순신은 충청 · 전라 · 경상의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해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노량해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한다.
『이순신』은 실록의 번역일 뿐이라는 김동인의 박한 평가가 있듯 역사 문헌을 다방면으로 활용한다. 『이충무공전서』 중 「행록」과 「난중일기」 등의 실기가 중요한 서사적 원천이 된다. 특히 이순신이 원균의 모함을 받아 옥고를 치르고 백의종군을 하는 “이통제”의 장에서 「난중일기」의 직접 인용은 이순신의 억울하고 비통한 심정을 전하는 데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그는 역사가의 입장에서 소설가의 상상력을 최소화했음을 「작가의 말」에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 문집인 「난중일기」는 이순신의 시각과 감정의 집적체이다. 이를 전경화함으로써 이순신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 이광수는 객관적 기술을 강조하지만, 이순신을 표상하는 '오직'과 '홀로'의 언어는 이순신을 절대화하는 가치의 위계화를 깔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충의로운 인격자인 이순신과 무능하고 이기적인 왕을 비롯한 조선 사대부 간의 극적 대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적 특징은 ‘이순신 유적 보존 운동’의 일환으로 이 작품이 쓰인 것과도 관계 깊다. 예외적 선인 이순신의 인간적 고통과 비애는 독자와의 정서적 일체감을 높여 유적 보존의 욕구와 필요성을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 영웅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이순신」은 하나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반면 이순신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부정적 형상화는 그가 「민족개조론」과 「지도자론」에서 주장한 조선 민족의 악성격을 반영한다. 거짓, 이기심, 숭명 사대주의로 대표되는 조선 민족의 악성격을 나머지 인물들이 체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족 영웅의 이면에 드리워진 조선 민족의 결핍과 열등의식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일제 식민 담론의 재생산일 수 있다는 비판의 소지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