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 ()

현대문학
작품
1942년 3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이광수가 『매일신보』에 총 184회에 걸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
작품/문학
창작 연도
1942.3.1-1942.10.31
발표 연도
1942.3.1-1942.10.31
간행 연도
1948.6.10
작가
이광수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원효대사』는 이광수가 1942년 3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총 184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완결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한 주 휴재 후에 다시 이어질 것임을 예고한 사고는 이 작품이 미완성 작품임을 시사한다. 1948년 생활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내가 왜 이 소설을 썼나」라는 단행본 서문은 연재 당시 작가의 말과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 때문에 조선 고대사를 일본 국체와 통합하려 했던 해방 전 대일 협력을 해방 후 민족정신의 우회적 표명으로 정당화하려 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정의
1942년 3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이광수가 『매일신보』에 총 184회에 걸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
작품 연재의 전후 맥락

『원효대사』는 이광수가 『매일신보』에 연재하기 전 오랫동안 끌어오던 동우회치안유지법 위반 사건의 최종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발표되었다. 이 판결을 앞두고 이광수는 사상 주1을 드러내는 글들을 발표하고 주2의 상징인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주3했다. 『원효대사』는 이광수가 천황의 신민으로 전시 협력을 강화하던 시점에 발표된 것이다.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라 불리던 『매일신보』에 발표되었다는 매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의 친일 행보가 겹쳐 『원효대사』는 작품론보다는 사상 변화의 동기와 맥락을 추적하는 데 관심사가 집중되는 특징적인 일면을 띤다.

내용과 구성의 특징

『원효대사』는 『삼국유사』원효 설화를 차용했다. 의상과 더불어 신라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답게 신이한 행적으로 가득 차 있다. 『삼국유사』에서 원효의 주4에 대한 일화가 등장한다. 이광수는 이 파계 모티프를 빌려오기는 하지만 허구적으로 재각색한다. 진덕여왕과 요석공주의 사랑을 받는 낭만적 인물로 재구성한 것이다.

작품 전반부는 원효-진덕여왕-요석공주, 원효-삼모-요석공주의 애정 삼각관계를 축으로 파계에 따른 원효의 내적 번민과 방황이 전경화된다. 반면 후반부는 거지와 도적 떼에 들어가 수난을 겪지만, 법력과 자비로 이들을 교화하여 국가의 기둥으로 거듭나게 하는 원효의 대승 주5이 중심 서사를 이룬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가교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5장의 '용신당 수련'이다. 용신당은 신라의 고유 신앙인 고신도(古神道)를 접하게 되는 장소로 중요하다. 여기서 원효는 옛날 주6과 같이 힘든 수련을 이겨내고, 구도자의 길이 불경에만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현세의 중생 구제와 충효 일체를 실행하는 데 '용신당 수련'은 일종의 전환점이 되는 셈이다.

고신도는 정교일체로 일본 국체(國體)에 헌신하는 일본 신도(神道)를 떠올리게 함으로써 텍스트 내적 분석에 그치지 않는 외적 규정력으로 작용한다. 이는 작품 연재 당시 이광수가 작가의 변에서 밝힌 일체유심의 정신과 대승보살의 정신, 즉 주7하여 중생을 위한 생활에 나가던 당대의 사기를 총후독자에게 보내고자 한다'는 전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의의 및 평가

『원효대사』는 신라 고승 원효의 파계와 세속적 번민, 그리고 이를 승화하여 중생 구제의 대덕을 실천하는 보살행이 주제이다. 조선의 상고사인 통일신라 이전의 신라를 무대로 『삼국유사』 속 역사적 인물 원효를 근대적 성격을 지닌 친숙한 캐릭터로 창조해 냈다. 왜 원효인가에 대한 이광수의 해방 후 언급은 이 작품을 쓰게 된 저간의 동기를 설명해준다. 원효가 자신의 마음을 끌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발언에 근거해 후대 연구자들은 원효에 투사된 당시 이광수의 심적 고민과 갈등을 읽어내고자 했다. 동우회의 최종심 판결을 앞두고 자신과 동료를 구하기 위해 적극적 친일 행보를 걸었지만, 외부에 드러난 모습과 달리 내면은 복잡하고 불안정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원효대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일본 신도를 연상시키는 신불 주8과 고신도의 강조, 원효의 보살행에 내재된 국수주의적 · 국가주의적 양상은 전시 동원의 보국문학으로 기능했다는 부정적 견해도 존재한다. 절충적 관점은 동조동근설(同祖同根說)에 기댄 내선일체론의 편승에도 불구하고 조선어 말살과 일본어 상용이 강제되던 엄혹한 시기에 우리 고어의 발굴과 재현으로 민족의식을 보존하고자 했다는 점에 강조점을 둔다.

참고문헌

원전

이광수, 「원효대사」 ( 『매일신보』, 1942.3.1.~10.31.)
이광수, 김병길 감수, 『원효대사』 (태학사, 2020)

단행본

김윤식, 『이광수와 그의 시대』 2 (솔, 1999)
사에구사 도시카쓰 외, 『한국 근대문학과 일본』 (소명출판, 2003)

논문

박균섭, 「이광수의 『원효대사』를 통해 본 전시동원체제와 식민교육의 성격」 (『교육문제연구』 46, 고려대 교육뮨제연구소, 2013)
방민호, 「이광수 장편소설 『원효대사』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정시학』, 2010. 겨울)
주석
주1

종래 가지고 있던 사상을 바꾸어서 그와 배치되는 사상으로 돌림. 우리말샘

주2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는 뜻으로,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조선인의 정신을 말살하고 조선을 착취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구호. 우리말샘

주3

‘일본식 성명 강요’의 전 용어. 우리말샘

주4

계(戒)를 받은 사람이 그 계율을 어기고 지키지 아니함. 우리말샘

주5

보살이 부처가 되려고 수행하는,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는 원만한 행동. 우리말샘

주6

신라 때에 둔, 청소년의 민간 수양 단체. 문벌과 학식이 있고 외모가 단정한 사람으로 조직하였으며, 심신의 단련과 사회의 선도를 이념으로 하였다. 우리말샘

주7

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하여 힘씀. 우리말샘

주8

철학이나 종교 따위에서, 서로 다른 학설이나 교리를 절충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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