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제주(濟州)이며 자는 평여(平汝), 호는 우관(藕館)이다. 제주도 출신의 도화서 화원 화가이며, 아들 고영문(高永聞)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화원화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1849년 헌종의 국장도감(國葬都監)과 문조비(文祖妃) 신정왕후의 존숭도감(尊崇都監)에 참여하였고, 1855년 정조의 후궁이며 순조 생모인 수빈(綏嬪) 박씨(朴氏)의 묘역을 이관하는 휘경원천봉도감의궤(徽慶園遷奉都監儀軌) 등에 참여하였다. 특히 초충도 가운데 나비를 잘 그려 ‘고나비[高蝶]’라 별칭되었으며, 나비를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투명한 유리그릇에 살아 있는 나비를 넣어 형태와 동작을 관찰하는 실사구시적 태도를 취하였다. 현전하는 작품이 매우 드물며 「노송게응(老松憩鷹)」(간송미술관) 정도가 남아 있다. 아들 고영문의 자는 성욱(聖郁), 호는 남주(南舟), 초명은 영문(永文)이며, 만년에는 수묵산수를 즐겨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