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심묘(心畝), 소운(筱雲)이다. 출생이나 성장에 관한 것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1910년대 초 조석진(趙錫晋)의 자택에서 손자 조광준(趙廣濬), 외손자 변관식(卞寬植), 박승무(朴昇武)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림을 배웠다. 1915년 가을 경복궁에서 식민통치 5년을 기념해 열린 조선물산공진회의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1920년 11월 예성회(藝星會)가 주최한 심묘 김창환 화회가 대동관(大同館)에서 열렸으며, 이때 정대유(丁大有)⋅변관식(卞寬植)⋅이상범(李象範)⋅이완용(李完用)⋅변종헌⋅이용우(李用雨)⋅강필주(姜弼周) 등이 90여 점을 출품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1921년 1월 10일자 『매일신보』에는 그가 남쪽 지방을 여행하며 적은 기행문이 실리기도 하였으나,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전하지 않고 있다. 현전 작품 가운데 오세창(吳世昌)을 위해 그린 「송월학명(松月鶴鳴)」(간송미술관)과 「봉학도(鳳鶴圖)」 2폭 가리개(1917, 궁중유물전시관)를 통해, 스승의 전통적인 화조화풍과 당시 새로 유입된 일본화풍을 모두 능숙하게 구사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