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와 음악, 사진 등의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서우학회 내에 설치되었다.
서우학회는 평안도와 함경도 출신의 지식인 12명이 1906년 10월 서울 종로구 원동(苑洞)에 인재 양성과 민중의식 개혁을 위해 발족한 애국계몽운동 단체였다는 점에서 교육서화관의 설립 배경이나 취지를 가늠할 수 있다. 『황성신문』 1907년 7월 16일자 광고에는 신청서를 제출한 10∼25세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사자(寫字) · 도화(圖畵) · 독서(讀書) 시험을 실시하며, 이를 통과한 학생들에게 사자․ 도화․ 사진․ 음악을 교육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서화뿐만 아니라 음악, 사진도 가르치는 종합예술학교를 표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김규진을 중심으로 양기훈(楊基薰)ㆍ조석진(趙錫晋)ㆍ안중식(安中植)ㆍ이도영(李道榮)ㆍ김유탁이 서화 교육을 담당하였다. 또한 같은 해 10월 김유탁은 평양의 대동관(大同館) 앞에 부녀자와 노동자 교육에 필요한 각종 서적과 서화ㆍ문방사우ㆍ복장 등의 용품을 갖춘 교육서화관을 개설하였고, 12월에는 사업을 확장하면서 협성서관(協成書館)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하지만 1908년 1월 서우학회가 한북흥학회(漢北興學會)와의 통합으로 서북학회(西北學會)로 조직이 바뀌면서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애국계몽운동 단체인 서우학회(西友學會) 내에 설치한 부설 기관이다. 교육서화관은 1911년 경성서화미술원(京城書畵美術院)이라는 최초의 근대적 미술교육기관이 설립되기 이전에 민중계몽적 차원에서 종합적 예술교육을 시도하였다는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