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석하(石下), 석하산인(石下山人)이다. 출생과 성장에 관한 것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1914년 관우상(關羽像) 제작을 둘러싼 김은호(金殷鎬)와의 일화로 보아 일찍이 중앙 화단의 서화가들과 교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910년대 후반 킨우초우한(金禹鳥範)이라 창씨개명하였으며, 1919년 금강산을 유람하고 강경에서 열린 서화회에 참석한 다음 일본 여행을 떠났다. 1920년 2월 8일 인천상업회의소에서 서화회를 개최하였다.
1923년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부의 「우후산수(雨後山水)」를 비롯해 1928년 제7회 사군자부의 「난(蘭)」과 「매(梅)」, 1930년 제9회 사군자부의 「매」, 1931년 제10회 사군자부의 「난」(특선)과 「석난(石蘭)」이 입선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산수와 사군자를 잘 그렸다.
1938년 평양에서 활동한 전통화가들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묵우회(墨友會)의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또한 김규진(金奎鎭), 서병오(徐丙五) 등의 서화가들과 교유하였으나,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전국을 떠돌다가 40대 초반 아편중독으로 사망하였다. 현전작품에는 「연당천우도(蓮堂聽雨圖)」(개인), 「파초도」(개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