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윤극(允極), 호는 이당(怡堂)이다. 충청북도 옥천 출신이며, 이정구(李廷龜)의 11대손으로 관재(貫齋)이도영(李道榮)의 족숙(族叔)이다. 1915년 가을 경복궁에서 식민통치 5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조선물산공진회의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1918년 결성된 서화협회의 정회원이었으며, 근대 초기 화단에서 나비그림을 전문으로 그린 직업화가로 화명이 높았다. 이처럼 그가 나비 그림으로 일가를 이루는 데에는 같은 연안 이씨 집안으로 이웃에 살았던 이교익(李敎翼)의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가 한국적 화풍을 완성한 남계우(南啓宇)의 구도와 이교익(李敎翼)의 여백 활용법 및 차분한 필법을 절충하여 장식적이고 화려한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1920년대 초 충청남도 부여로 이주해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여 1927년 제6회 조선미술전람회에 「호접도(蝴蝶圖)」가 입선하는 등 사망할 때까지 그림에 전념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호접탐화(蝴蝶探花)」(1918, 간송미술관), 「부귀호접(富貴蝴蝶)」(간송미술관) 등 다수의 작품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