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동도 ()

무수동도
무수동도
회화
작품
국가유산
1729년(영조 5) 권이진이 화공(畵工)을 시켜 자신의 고향인 무수동 일대의 경관을 그리게 한 7폭의 실경 산수화.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무수동도(無愁洞圖)
분류
유물/일반회화/산수화/산수화
지정기관
대전광역시
종목
대전광역시 시도유형문화유산(2010년 04월 12일 지정)
소재지
대전광역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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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729년(영조 5) 권이진이 화공(畵工)을 시켜 자신의 고향인 무수동 일대의 경관을 그리게 한 7폭의 실경 산수화.
구성 및 형식

「무수동도(無愁洞圖)」는 7폭으로 이루어진 실경 산수화(實景山水畵) 작품으로, 종이 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렸다. 그림의 크기는 각 폭의 세로가 121.5㎝, 가로가 48.3㎝이며, 최근에 후손 권감(權堪)이 쓴 제발(題跋)을 추가해 8폭으로 개장한 병풍의 전체 크기는 세로 183.0㎝, 가로 490.0㎝이다. 후손 권태원의 소장품이며, 2010년 4월 12일에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내용

「무수동도」의 제작 배경과 내용은 주문자인 유회당(有懷堂)권이진(權以鎭, 1668∼1734)의 4대손 권감(1760∼1823)이 그린 「제무수동도(題無愁洞圖)」를 통해 알 수 있다. 그 내용에 의하면, 1729년(영조 5) 호조판서 권이진이 떠나온 고향을 그리며 화공에게 종가(宗家)와 선영(先塋)이 자리하고 있는 무수동(현재 대전광역시 중구 무수동)의 여러 경관을 8폭으로 그리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림은 현재 7폭만 남아 있는 상태이고, 원래의 배열 순서도 알 수 없다.

병풍의 현재 상태에 의거하여 각 폭의 내용을 살펴보면, 제1폭에는 유회당의 건물과 주변 풍광이 꽤 사실적으로 재현되어 있다. 제2폭은 보문산(普文山) 중턱에 자리한 보문사(普文寺) 일대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화면의 대부분이 산 아래 펼쳐진 논밭으로 채워졌다. 제3폭은 ‘유회당 종택도(有懷堂宗宅圖)’로서 화면의 하부에 현존하는 가묘(家廟)를 포치하였고, 오른편에 계단식 전답을 비중 있게 그려 넣었다. 제4폭은 장수공가(長水公家)의 모습이라고 하는 동리와 주변 풍경을 담았고, 제5폭은 산에서 흘러나온 물이 암벽을 지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경관으로 채워져 있는데, 무수동 입구의 유등천(柳等川)과 옥녀봉(玉女峰) 일대 풍경으로 추정된다. 제6폭에는 초옥(草屋)과 버드나무 아래 동자, 그리고 뒤편에 사각형으로 구획된 전답이 펼쳐지는데, 버드내 혹은 유천(柳川)으로 불리는 지역의 모습으로 보인다. 마지막 제7폭은 산 아래 넓게 펼쳐진 하천에 배를 띄우고 선유(船遊)하는 인물이 그려진 산수인물도(山水人物圖) 형식이다.

이와 같은 「무수동도」의 내용은 주문자인 권이진의 요청에 따라 정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산수경관의 풍치 그 자체보다는 권씨 집안의 세거지인 무수동 일대의 종택과 사당, 소유 전답 등을 핵심 제재로 삼아 비중 있게 처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가에 대한 정보가 없고 보존 상태가 불량하여 세부 필치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으나, 산과 언덕에 가해진 피마준(披麻皴), 송림을 비롯한 수목 표현, 건물 묘사법 등에서 조선 후기의 산수 화법이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무수동도」는 조선 중기부터 활발히 제작된 양반 사대부들의 향촌 세거지와 별서(別墅)를 재현한 실경 산수화의 일종이다. 작품의 주문자와 제작 경위, 제작 시기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화폭의 규모와 수량이 적지 않고 화면의 내용도 다채로워 회화사 연구에 유용한 자료이다. 특히 대전의 무수동 일대의 경관을 담은 유일한 실경 산수화로 알려져 있어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참고문헌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정밀학술조사 보고서』(대전광역시청, 2010)
『그림에게 물은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국사편찬위원회 편, 두산동아, 2007)
『고문서에 담긴 옛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장서각, 2003)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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