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증(金萬增, 1653∼1720)의 초상화 2점은 비단 바탕에 수묵채색으로 그린 전신상(全身像)과 반신상(半身像)이다. 전신상의 크기는 세로 175.0㎝, 가로 89.0㎝이며, 반신상의 크기는 세로 92.0㎝, 가로 63.0㎝이다. 2010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충청남도 논산의 광산김씨 돈촌공(遯村公) 종중에 소장되어 있다.
전신상은 유학자의 평상복 차림인 심의(深衣)에 복건(福巾)을 쓰고, 공수 자세를 취한 좌안팔분면(左顔八分面)의 입상이다. 후덕한 얼굴과 품이 넉넉한 심의에 감싸인 풍채가 당당하며, 흰 머리카락과 수염을 통해 노년기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갈색 선으로 얼굴 윤곽을 잡고 갈색 담채로 피부색을 표현했으며, 이마와 코, 광대뼈 등에 약간 더 진한 채색을 가해 굴곡을 나타냈다. 이목구비와 주름살을 필선 위주로 처리했고, 눈썹과 머리카락, 수염을 한올한올 정성껏 표현했다. 눈은 먹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흰자위에 약간의 홍색을 더해 생기를 부여했다. 검은 색 복건에는 선을 덧그어 주름을 나타냈고, 심의의 주름은 일정한 굵기의 먹 선으로만 표현하여 평면적인 느낌을 준다. 이와 달리 허리에서 늘어지는 오색 끈과 초록색 태사혜(太史鞋)는 정교하게 묘사하였다. 특히 오색 끈에는 금니(金泥)를 사용해 화려함을 더한다. 반신상의 형상이나 세부 표현은 전신상과 거의 같지만, 보존 상태가 더 양호하다. 최근에 개장한 전신상과 달리 제작 당시의 장황(粧䌙, 표구)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김만증의 초상화 2점은 광산김씨 문중에서 대대로 보관해온 유물로서 유전 내력이 분명한 작품이다. 화면에 적용된 화풍은 육리문(肉理文)으로 피부결을 표현하고 옷주름에 음영을 더해 사실감을 높이기 이전, 즉 선염(渲染)과 필선을 위주로 묘사했던 17세기의 초상화법을 보여준다. 김만증의 풍모와 인상으로 미루어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인 18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공들여 제작한 초상화로서 회화적 완성도가 높지만, 누가 그렸는지는 알 수 없다. 송시열 초상의 계통을 잇는 가거(家居)초상의 일종으로 김이안 초상과도 유사성을 보인다. 현재 알려진 조선시대 초상화 중 전신입상이 드문 편이고, 동시에 제작된 반신상이 함께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