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도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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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도병
기성도병
회화
작품
국가유산
평양성 내외의 자연적, 인문적 경관과 풍정(風情)을 재현한 19세기 산수화.
이칭
이칭
평양도병(平壤圖屛)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기성도병(箕城圖屛)
분류
유물/일반회화/산수화/산수화
지정기관
서울특별시
종목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유산(2003년 12월 30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신문로2가, 서울역사박물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평양성 내외의 자연적, 인문적 경관과 풍정(風情)을 재현한 19세기 산수화.
개설

2003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종이 바탕에 채색. 세로 155.9㎝, 가로 419.9㎝.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평안도 감영 소재지인 평양부성(平壤府城) 내외의 풍경과 평안감사 행렬을 연폭의 8첩병풍에 담았다. ‘기성(箕城)’이라는 지명은 평양이 고대 기자조선(箕子朝鮮)의 수도라는 인식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기성도병(箕城圖屛)」과 같은 화면 구성은 평안감사 윤두수(尹斗壽)가 1590년(선조 23)에 간행한 『평양지(平壤志)』에 실린 판화 「평양관부도(平壤官府圖)」에서 유래한다. 18세기 이후 진경산수화와 회화식 지도가 발달하면서 대형 화면에 평양성의 전경(全景)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는 기성도가 등장하였고 이후 행렬이나 민속놀이 장면이 추가되기도 했다.

내용

「기성도병」은 8폭이 연결되는 가로로 긴 화면에 평양부성과 대동강(大同江) 일대, 그리고 인근의 산악 풍경까지 광활한 영역을 부감시(俯瞰視: 그림의 시점을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로 조망해 담았다. 또한 주요 경물 옆에 단정한 해서로 명칭을 부기하였다. 제12폭의 영명사(永明寺)가 자리한 북성(北城)과 그 너머 북쪽 연봉에 이어 제35폭에는 내성(內城), 즉 평양성의 중추가 되는 시가지가 포치되었다. 제6폭에 중성(中城)이, 제78폭에 기자정전(箕子井田)의 유허(遺墟)로 전해지던 외성(外城) 구역이 그려졌다. 견고한 석축에 감싸인 내성은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대로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구획되었고, 선화당(宣化堂)과 대동관(大同館) 등 주요 관서와 누정, 민가가 밀집되어 있다. 1776년(영조 52) 평안감사 서명응(徐命膺)이 처음 건립한 오순정(五詢亭) 건물이 확인되고, 1804년(순조 4) 3월에 일어난 대화재 때 소실되었다가 1890년에 재건된 애련당(愛蓮堂)은 빈 터만 남아 있다. 따라서 18041890년 사이의 평양의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단에는 대동강과 십리장림(十里長林)이 늘어섰고, 강 가운데 양각도(羊角島)와 능라도(綾羅島)가 있다. 화면 하부의 대동강으로부터 점차 상부 연봉과 원산(遠山)으로 전개되는 원근의 공간감이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수묵과 채색을 적절히 안배함으로써 평양성의 위용과 특색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완만한 굴곡으로 이어지는 산과 구릉 표현에 거친 피마준(披麻皴)과 함께 녹색을 주조로 한 청색과 갈색 진채를 사용했다. 성곽이나 누대, 전각 등은 계화법(界畵法: 건물, 배, 수레 등을 자와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정밀하게 그리는 기법)으로 간결하게 묘사했다. 각종 수목은 먹과 담채로 단순화시켜 묘사했는데, 꽃이 핀 나무들이 섞여 있어 화사한 분위기를 풍긴다. 강물에는 청색 담채를 풀어 황포돛배와 조화시키고 배 주변에는 수파(水波)를 그려 넣었다. 강 위 행렬의 주관자로 생각되는 평안감사는 제2폭의 정자선(亭子船) 안에서 기생들과 호위병들에 둘러싸여 있다. 신분과 직급에 따라 복색을 달리한 관원과 병사들이 정연한 대오를 형성하며 대동문(大同門)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체 규모에 비해 행렬 부분이 과장되어 있고, 개별 인물의 신체는 작달막하다. 행렬도가 첨가된 점이나 청록채색법, 인물 묘사법 등 전반적으로 19세기 기성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형 병풍 화면에 평양성 안팎의 경관을 재현한 기성도병은 국내외에 수십 점이 전하고 있다. 18세기 이후 수려한 경관과 재화가 풍부한 평양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다양한 형식으로 평양도가 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19세기 이후에는 이「기성도병」과 같이 평안감사의 행사 장면이 추가된 기성도병의 제작이 증가하였다. 비록 제작 시기와 작자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짜임새 있는 구도와 안정된 필묵법이 적용되었고, 제작 당시 평양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각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평양지(平壤志)』(윤두수 편, 1590년)
『조선시대 평안도 함경도 실경산수화』(박정애,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4)
『옛 그림을 만나다』(서울역사박물관, 2009)
「18-19세기 기성도 병풍 연구」(박정애, 『고문화』74, 한국대학박물관협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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