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화첩 크기는 세로 43.3㎝, 가로 32㎝.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관서팔경(關西八景)을 비롯한 평안도의 명승지를 재현한 실경산수화 16폭을 엮은 화첩이다. 화첩의 표지로 사용한 능화지(菱花紙)의 가장자리가 많이 닳은 상태이다. 올이 성근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그렸는데, 해충에 의한 손상이 심한 편이다. 그림의 크기는 대략 세로 40㎝, 가로 61㎝이다. 앞쪽 내지에 찍힌 주문인(朱文印)에 “진주하씨도서지장(晋州河氏圖書之章)”이라 새겨져 있어 진주하씨 집안의 소장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외에 제작 경위나 화가를 밝힐 수 있는 관서(款書)나 제발(題跋)은 없다.
「관서명승도첩」의 첫 장부터 제4장까지는 영변(寧邊)의 묘향산(妙香山)과 인근 지역의 풍경을 담았다. 제5장에는 영변 철옹성(鐵甕城)이, 제6장에는 평양의 대동강(大同江)과 능라도(綾羅島) 일대의 경관이 그려져 있다. 이어서 제7장부터 제13장까지는 각각 강동(江東) 열파정(閱波亭), 성천(成川) 강선루(降仙樓), 삼등(三登) 황학루(黃鶴樓), 은산(殷山) 담담정(澹澹亭), 안주(安州) 백상루(百祥樓), 강동(江界) 인풍루(仁風樓), 의주(義州) 통군정(統軍亭)의 경관이 재현되었다. 제14장에는 삼등 육육동(六六洞)이 그려졌고 나머지 두 장은 다시 평양의 경관으로 채워졌다. 대부분 화면의 우측 상부에 지명을 써넣었으나 ‘묘향산’과 ‘육육동’에는 경관명을 기입했다. 명승지의 위치나 계절색으로 미루어 설정 가능한 유람 경로에 따라 순차적으로 배열했다고 보기 어렵다.
일반적인 명승도와 마찬가지로 각 장면은 누정과 같은 초점 경물을 중심으로 일대 자연 경관을 포괄한 형국이다. 다만 평양의 경관을 다양한 시점에서 조망한 점이나 ‘묘향산’과 ‘육육동’ 장면이 포함된 점은 이례적이다. ‘묘향산’의 경우 광대한 경관을 소화하기 위해 넉 장의 화면을 연결시켜 어천역(魚川驛)으로부터 최고봉인 비로봉(毘盧峯)까지 소화했고, 보현사(普賢寺)를 중심으로 산자락 곳곳의 계곡과 폭포, 암자와 고적 등 다양한 지형지물을 재현하고 명칭을 병기하였다. 또 삼등 황학루 아래 능성강(能成江) 건너편의 36동천을 일컫는 ‘육육동’의 경관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예이다. 육육동은 주로 19세기 문인들의 시문에서 언급되는 명승지여서 「관서명승도첩」의 제작 시기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이다.
화풍상으로는 여타의 관서명승도 작품들과 달리 청록채색 기법을 적용하였다. 산과 언덕, 암벽 등에 사용한 진채(眞彩) 사용법은 19세기 이후에 확산된 채색법과 상통한다. 또 점묘(點描)와 개자형(介字形)의 화보풍 수목 묘사법, 하천에 자잘한 돌과 갈퀴 모양의 수파(水波)를 그려 넣는 점은 18세기 말 화원화풍(畵員畵風)의 특징이다. 강변의 모래톱이나 섬, 지면의 처리 방식, 계화법(界畵法: 건물, 배, 수레 등을 자와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정밀하게 그리는 기법)을 적용한 건축물의 묘사법도 마찬가지이다. 전반적으로 18세기 말에 정립된 화원화풍의 잔영과 19세기 이후에 확산되는 장식적 채색화풍이 섞여 있다.
「관서명승도첩」은 현존 작품 중 가장 많은 평안도의 명승도 구성된 화첩이다. 각 장면은 누정이나 누대 등 초점 경물을 중심으로 인근의 자연 경관을 포괄하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명승도의 특징을 보여준다. 화면의 내용과 구도와 필치, 청록채색법에 나타나는 특징으로 미루어 19세기에 화원이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시대 평안도의 명승지에 대한 관심과 재현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시각 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