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 ()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
회화
작품
문화재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이일이 함경도 지역을 침략하던 여진족 시전부락을 소탕하는 광경을 담은 기록화.
정의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이일이 함경도 지역을 침략하던 여진족 시전부락을 소탕하는 광경을 담은 기록화.
구성 및 형식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는 종이 바탕에 수묵채색으로 그렸고, 크기는 세로 142.8㎝, 가로 102.0㎝이다. 2010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육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화면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단에 전서체로 쓴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라는 제목이 있고, 중앙부는 전투 장면을 담은 그림으로 채워졌으며, 하단에 좌목(座目)이 딸린 계축(契軸) 형식이다. 붉은 색 선으로 제목과 그림, 좌목 부분을 구획하였다.

내용

이 작품은 조선 중기의 무신 장양공(壯襄公) 이일(李鎰, 1538∼1601)이 수시로 함경도를 침범하던 여진족을 소탕하는 전투 장면을 담은 기록화이다. 화면 하단의 좌목에는 대장 이일을 비롯해 그 휘하의 조전장(助戰將) 서득운(徐得運), 종사관(從事官) 이용순(李用淳), 승의랑(承議郞) 심극명(沈克明), 심약선교랑(審藥宣敎郞) 이혜정(李蕙汀), 조전장 7명의 성명이 차례로 쓰여 있다. 이어 선봉장(先鋒將)인 고령진(高嶺鎭) 병마첨절제사 유극량(劉克良)을 포함한 22명의 좌위(左衛) 소속 군병, 선봉장인 함경북도 조방장(助防將) 이천(李薦)을 포함한 24명의 우위(右衛) 소속 군병의 성명이 나열되어 있다. 좌목 끝에 1849년(헌종 15) 윤하(閏夏)에 쓴 이재관(李在寬)의 발문이 있어 그림의 내용과 제작 경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발문을 쓴 인물이 19세기에 활동한 화원(畵員)으로 잘 알려져 있는 소당(小塘)이재관(李在寬, 1783∼1837)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발문의 내용에 따르면, 원래 장양공 이일의 손자인 경상좌수사 이견(李汧, 1618∼?)이 조부의 공훈을 기념하고 후세에 알리고자 3점의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를 제작해 집안에 보관했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한 건밖에 남지 않게 되자 1849년(헌종 15)에 다시 3점을 제작해 예전과 같이 나누어 가장(家藏)했다는 것이다. 화면은 전형적인 계축 형식이지만 일반적인 계회도가 아니라 조상의 행적을 기리는 목적으로 제작한 기록화이다.

이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는 전투 장면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특이한 사례이다. 여진족 시전부락 일대의 넓은 지역을 부감시(俯瞰視)로 조망하고, 장양공의 부대와 여진족 사이에 벌어진 전투 상황을 화면 가득 담았다. 지형도식 묘법으로 지형지세의 틀을 잡았는데, 산봉우리는 먹선으로 윤곽을 그린 다음 안쪽에 호초점(胡椒點)을 찍어 질감을 나타냈다. 또 아래쪽 근경의 산봉과 능선에 화보풍(畵譜風) 수목들을 배치해 상부의 원경과 구별하였다. 즉 17세기의 산수화법과 지형도식 표현이 혼재된 상태이다. 전투에 참여한 양측 군사들의 인물묘법이 기계적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자세로 묘사함으로써 치열한 전장의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1849년(헌종 15) 이모 당시의 화단에서 유행하던 화풍과 거리가 있는데, 원본의 양식을 충실히 옮긴 탓으로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이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는 1849년(헌종 15)에 17세기의 원본을 이모(移摹)한 작품으로서, 그림의 내용은 물론 화풍에서도 17세기의 특징이 확인된다. 전형적인 계축 형식이지만, 무관 집안에서 선조의 업적을 기리고 후대에 전할 목적으로 제작한 기록화이다. 조선시대 전쟁기록화가 매우 드문 만큼 제작 내력까지 파악할 수 있는 작품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 연구」(이재호,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3)
「소당 이재관의 회화 연구」(김소영, 전남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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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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