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례도(大射禮圖)」는 두루마리 형식으로 어사도(御射圖) · 시사도(侍射圖) · 시상도(施賞圖)로 이루어진 3장면의 그림, “어사삼획(御射三獲)”이라고 쓴 어사의 성적, 집례관(執禮官) 이덕인(李德寅)과 집사관(執事官) 이섭원(李燮元)의 관직과 성명, 밀창군(密昌君, 1677∼1746) 이하 시사관(侍射官) 30명의 좌목과 성적, 1743년(영조 19) 8월에 쓴 병조판서 서종옥(徐宗玉, 1688∼1745)의 ‘대사례도서(大射禮圖序)’로 구성되어 있다. 비단 바탕에 수묵채색으로 그렸고, 크기는 가로 60.0㎝, 세로 282.0㎝이다. 연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0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대사례’는 임금이 성균관에 나아가 석전례(釋奠禮)를 지낸 뒤 신하들과 함께 활쏘기를 하는 의식이다. 오례(五禮) 중 군례(軍禮)에 해당하는 의식으로 임진왜란 이후 폐지되었으나 영조가 시의에 맞게 의문(儀文)을 정비하여 부활시켰다. 이 「대사례도」는 1743년(영조 19) 윤 4월 7일에 거행된 대사례 의식을 기록한 횡권(橫卷)이며, 관련 내용이 『대사례의궤(大射禮儀軌)』에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어사도’에 영조가 활 쏘는 모습, ‘시사도’에 2명씩 짝을 지어 활을 쏘는 신하들의 모습, 그리고 ‘시상도’에 결과에 따라 상벌을 내리는 의식의 전 과정을 순서대로 담았다. 좌목과 서문의 내용으로 보아 당시 참여한 시사자들이 발의해 만든 기념물로 생각된다. 화면에 등장하는 의장기를 비롯해 악기, 의물, 복식 등의 종류와 묘사가 『대사례의궤』의 기록과 일치한다. 인물묘법이나 기물의 세부 표현이 치밀하며, 상 · 하단부의 수목은 18세기 중엽의 산수화풍을 보여준다.
그림이 시작되는 부분에 유전 내력을 짐작케 해주는 3개의 인장이 있다. 주문방인의 ‘보문관장(普文館章)’과 ‘학무아문지인(學務衙門之印)’, 백문방인의 ‘연세대학교박물관진장(延世大學校博物館珍藏)’인제, 인주의 색이 각각 달라 날인한 시점은 모두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화권 마지막에 써진 “연희대학교동방학연구소 일구오오년 십일월십사일장(延禧大學校東方學硏究所 一九五五年 十一月十四日藏)”은 연세대학교에 입수된 시기를 알려준다.
이 작품은 화풍상의 특징으로 미루어 1743년(영조 19), 행사 당시에 그려진 원본으로 생각된다. 현존 행사기록화 중 군례 의식을 재현한 그림이 많지 않은데, 관련 의궤를 통해 그 내용까지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사례이다. 또 제작시기가 확실한 작품인 만큼 당시 화원(畵員)들의 화풍과 그 수준을 엿볼 수 있는 18세기 전반의 대표적인 행사기록화로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