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진연도병(辛丑進宴圖屛)」8폭은 함녕전외진연도(咸寧殿外進宴圖)를 비롯해 함녕전내진연도(咸寧殿內進宴圖), 함녕전야진연도(咸寧殿夜進宴圖), 함녕전익일회작도(咸寧殿翌日會酌圖) 등 4장면의 진연도와 진연청(進宴廳) 당상과 낭청의 좌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말미에 “광무오년 신축 칠월일(光武五年辛丑七月日)”이라고 묵서되어 있어 1901년(광무 5)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비단 바탕에 수묵채색으로 그렸고, 각 폭의 크기는 세로 149.5㎝, 가로 48.5㎝이다. 연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0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고종황제의 오순을 기념해 1901년(광무 5) 7월 26일부터 29일 사이에 거행된 진연 장면을 시각화한 4장면의 그림과 좌목으로 구성된 8폭 병풍이다. 이때의 진연에 대해서는 『신축진연의궤(辛丑進宴儀軌)』를 통해 자세히 고증할 수 있다. 당시 진연청 당상은 원수부(元帥府) 군무국총장(軍務局總長) 임시서리(臨時署理) 민영휘(閔泳徽, 1852∼1935), 의정부(議政府) 찬정(贊政) 겸 규장각(奎章閣) 학사(學士) 김성근(金聲根, 1835∼1919), 의정부 찬정 이지용(李址鎔, 1870∼?)이었다. 또 낭청은 탁지부(度支部) 주사(主事) 이규백(李圭白, 1863∼?), 영친왕부(英親王府) 전위(典衛) 안필용(安必瑢), 내부(內部) 주사(主事) 서병염(徐丙炎, 1852∼?), 통신원(通信院) 주사(主事) 이범신(李範信), 태복사(太僕司) 주사(主事) 서상경(徐相璟), 탁지부 주사 윤태길(尹泰吉), 교방사(敎坊司) 주사 임건상(林健相), 의정부 주사 윤형구(尹逈求) 등이었다. 이와 같은 형식은 「신축진연도병」이 진연청에서 제작한 계병(契屛)임을 말해준다.
제1∼2폭의 ‘함녕전외진연도’는 7월 26일의 행사 장면으로 고종이 주인공이며, 황색으로 치장된 휘장과 상탁보, 외보계(外補階) 위에 세워진 태극기와 신식 군복을 입은 군졸의 모습에서 대한제국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제3∼4폭은 27일에 있었던 ‘함녕전내진연(咸寧殿內進宴)’의 장면으로 황후(명성황후) 자리가 공석이어서 고종황제만 참석했다. 제5∼6폭의 ‘함녕전야진연도(咸寧殿夜進宴圖)’는 그날 밤에 거행된 야연으로 유리등(琉璃燈)과 촛대, 사롱등(紗籠燈)이 보인다. 제7폭은 29일 황태자가 행사를 준비한 내명부와 진연청 당상들에게 베푼 연향 장면을 담은 ‘함녕전익일회작도(咸寧殿翌日會酌圖)’이다. 각 장면의 세부에 가해진 치밀하고 화려한 묘사를 통해 궁중연향의 분위기가 전해지며, 바탕 재로인 고운 비단, 화면의 구성, 배채법(背彩法)의 적용, 금채(金彩) 사용, 명암법의 구사 등 19세기 궁중연향도병의 전형적인 형식과 양식을 보여준다.
「신축진연도병」은 진하도(進賀圖)를 생략한 채 연향도(宴享圖)만으로 구성된 이례적인 사례이자 현재 1901년(광무 5) 7월의 진연을 그린 병풍으로는 유일하게 알려진 작품이다. 화면에서 1904년(광무 8) 화재로 소실된 함녕전의 원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서양식 복장을 한 군졸의 모습 등 시대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장황도 개장되지 않고 원 모습을 보존하고 있어 19세기 궁중 행사기록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