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입학도첩 ()

회화
작품
문화재
1817년(순조 17) 3월 11일, 성균관에서 거행된 효명세자의 입학례 과정을 담은 기록화첩.
정의
1817년(순조 17) 3월 11일, 성균관에서 거행된 효명세자의 입학례 과정을 담은 기록화첩.
구성 및 형식

『왕세자입학도첩(王世子入學圖帖)』은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 翼宗으로 추존)가 입학례를 치르는 일련의 의식 장면을 담은 5폭의 그림과 다음날 행해진 진하례(進賀禮) 장면 1폭, 그리고 의식의 절차를 기록한 의주(儀註), 그리고 13명의 세자시강원 관리들이 지은 부(賦)와 남공철(南公轍)의 발문(跋文)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후대에 개장하면서 표지에 “왕세자출궁도(王世子出宮圖)”라는 표제를 달았으나 전체 내용을 포괄하는 제목은 아니다. 총 6폭의 행사기록화는 종이에 수묵채색으로 그렸고, 각 폭의 크기는 세로 34.1㎝, 가로 46.5㎝이다.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0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내용

『왕세자입학도첩』을 펼치면, 그림에 앞서 입학의주, 즉 출궁의(出宮儀)·작헌례(酌獻禮)·입학의(入學儀)·수하의(受賀儀)가 쓰여 있다. 그림 뒤에는 세자시강원의 좌빈객 이만수(李晩秀, 1752∼1820), 박사 겸 우빈객 남공철(1760∼1840), 좌부빈객 김희순(金羲淳, 1757∼1821), 우부빈객 김이교(金履喬, 1764∼1832), 보덕 서정보(徐鼎輔, 1762∼?), 겸보덕 이헌기(李憲琦, 1774∼1842), 필선 이종목(李鍾穆, 1761∼?), 겸필선 홍경모(洪敬謨, 1774∼1841), 문학 김병구(金炳球, 1782∼?), 겸문학 윤응대(尹應大, 1769∼?), 사서 김재원(金在元, 1768∼?), 겸사서 이규현(李奎鉉, 1777∼?), 설서 남이무(南履懋, 1780∼?) 등 13명의 관리들이 지은 찬시(讚詩)와 남공철의 발문이 실려 있다.

총 6폭의 행사기록화는 「왕세자출궁도」, 「작헌도(酌獻圖)」, 「왕복도(往復圖)」, 「수폐도(脩幣圖)」, 「입학도」, 「왕세자수하도(王世子受賀圖)」이다. 화첩의 전체 내용으로 볼 때 효명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며 입학례를 준비하고 진행했던 세자시강원의 관리들이 모든 행사를 마치고 기념으로 제작한 계첩(契帖)으로 판단된다. 화풍상의 특징으로 미루어 1817년(순조 17) 당시 화원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건축물 묘사에 사용한 계화법(界畵法)이나 정연한 필선과 채색으로 나타낸 인물 등 전형적인 궁중행사기록화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왕세자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의례를 시각화한 현존 유일의 행사기록화이다. 또 행사의 내용과 절차, 관련 인사들의 면면이 소상히 정리되어 있는 자료인 동시에 왕세자 관련 행사기록화의 형식과 구성상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조선시대 기록화의 세계』(고려대학교박물관, 2001)
『조선시대 궁중기록화 연구』(박정혜, 일지사, 2000)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박정애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