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김씨(慶州金氏)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의 족보 목판은 1648년(인조 26) 무자보(戊子譜, 1648)를 완성한 후 1685년(숙종 11) 판각한 것으로 40매 중 23매만 전한다. 이 목판은 2009년 12월 4일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파는 고려 말 판도판서 김장유(金將有)가 충청도 보은으로 입향하면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보은지역의 경주김씨는 7세에 이르러 크게 번성했는데, 충암 김정(金淨, 1486∼1521)과 그의 조카 사위 대곡 성운(成運, 1497∼1579)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판도판서공파의 초간 족보는 무자보라 전하나, 이때 간행되지 못하고 1685년(숙종 11) 목판으로 처음 인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12대손 김현필(金鉉弼, 1638∼?)의 발문에 비로소 목판으로 인쇄하였다는 내용으로 알 수 있다.
목판의 서문에, 족보는 숭정기원후 21년인 무자년 정월에 완성하였고 일을 맡아 이룬 이는 전한공(典翰公) 김천우(金天宇)의 손자 얼손 김섭(金涉), 글을 쓴 이는 군수공(郡守公) 김천부(金天富, 1506∼1548)의 손자 김상(金鋿, 1607∼1674)이라 하였다. 발문은 1685년(숙종 11) 8월 판서공(判書公)의 12대손 김현필이 썼다.
목판은 1648년(인조 26) 완성된 무자보를 1685년(숙종 11)에 판각한 것이다.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파의 족보 자체가 희귀한 상태에서 족보 목판이 남아있다는 사실, 또 대곡성운의 수학처로 알려진 모현암(慕賢菴)에서 판각하여 보관한 사실 등이 전하고 있다.
목판은 모두 40매로 보이는데, 현재 17매는 결실되고 23매만 전하며, 종손이 보관하고 있다. 결판된 17매 중 2매는 보은 법주사에 소장되어 있다. 목판은 가로 45.0㎝, 세로 28.6㎝, 두께 2.8㎝의 크기이다. 남아있는 목판은 장수를 기준으로 서(序) 45, 1・2, 4・6, 7・8, 9・10, 15・16, 17・18, 19・20, 23・24, 25・26, 29・30, 35・36, 37・38, 39・40, 41・42, 43・44, 56・57, 60・61, 64・65, 66・67, 70・71, 72・73, 76・78이다.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파 족보 목판은 비록 결판이 있지만, 17세기 족보 간행과 목판 인쇄술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