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국일암 벽암선사 진영 ( )

합천 해인사 국일암 벽암선사 진영
합천 해인사 국일암 벽암선사 진영
회화
작품
문화재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소재 해인사 산내 암자인 국일암(國一庵)에 있는 벽암 선사의 진영.
정의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소재 해인사 산내 암자인 국일암(國一庵)에 있는 벽암 선사의 진영.
구성 및 형식

이 진영은 세로가 다소 긴 화면이다. 배경은 의좌상(倚坐像)의 진영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화문석(花紋席)으로 바닥과 벽을 구분하여 공간 구성을 하였다. 그 중앙에 주인공인 벽암존자가 오른쪽을 향하여 의자에 앉아 있는 좌안7분면의 전형적인 전신의자상이며 패널형식이다.

내용

이 진영은 화면 왼쪽 윗 부분에 아래로 길게 ‘사국일도대선사벽암존자지진상(賜國一都大禪師碧巖尊者之眞相)’이라고 제명이 쓰여진 것처럼 벽암선사(碧巖禪師, 1575∼1660)의 진영이다. 벽암은 1588년(선조 12)에 출가하여 부휴선수(浮休善修)를 만나 공부하였다. 임진왜란 중인 1593년(선조 26)에는 사명당 유정의 천거를 받아 승병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 뒤 판선교도총섭(判禪敎都摠攝)으로 봉은사 주지를 겸하였고, 1624년(인조 2)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으로서 남한산성을 3년 만에 완공하였다. 이 공으로 ‘보은천교원조국일도대선사(報恩闡敎圓照國一都大禪師)’라는 존호를 받게 되었다. 병자호란 때도 항마군(降魔軍) 승병장을 맡았으며, 그 후 송광사, 해인사, 백운사, 상선암, 보개산, 묘향산, 속리산 등으로 옮겨 다니며 교화 활동을 펼치다 화엄사로 돌아와 1660년(현종 1)에 입적하였다.

현황

부분적으로 보채한 흔적과 화면에 약간의 결락이 있긴 하지만,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향좌측 상단에는 주색 바탕의 화제란을 마련하고 황색으로 ‘사국일도대선사 벽암존자지진상(賜國一都大禪師碧巖尊者之眞相)’이라 적었고, 배면에 묵서가 남아 있다.

벽암존자는 화면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좌안7분면의 전신 의자상으로, 바닥에 족좌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왼손은 불자(拂子)를 쥐고 어깨에 기대고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 위에 내려 엄지와 검지를 들어 변화를 주고 있다. 얼굴과 피부는 짙은 갈색으로 칠하였고 머리카락과 모근은 담묵(淡墨)으로 바림한 후, 먹과 호분으로 세점을 찍어 표현했다. 복식은 다갈색이 섞인 녹색 장삼에 녹청의 조(條)가 표현된 주색가사를 걸치고 있다.

장삼에는 전체적으로 모란문을 시문하였는데, 매우 특이한 사례이다. 의자 등받이는 홍색 법피가 덮여 있는데, 운보문과 고리 형태의 원형 그리고 방형 무늬를 표현하였고, 법피 가장자리에는 백색 바탕에 화문으로 장식하여 변화를 주었다. 특히 배경으로 하단에 화문석(花紋席)을 깔아 바닥과 벽으로 2단 구분한 것은 대체로 바닥 좌상에서 볼 수 있는 공간 구성으로, 의좌상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이다. 상단의 녹청 벽면에는 운보문(雲寶紋)을 베풀었다. 의자는 오른쪽으로 향해 있는데, 사선을 이루며 앉아 있는 인물의 자세와 달리 앞뒤 다리 길이의 차이를 두지 않고 원근법에 다소 어긋나게 모두 똑같은 수평선상에 둠으로써 표현의 미숙함이 보인다.

이 작품은 인물 및 대상물의 묘사가 경직되고 사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18세기 후반 고승 진영의 양식적 특징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진영은 화면 중앙에 앉아있는 모습의 벽암존자를 단독 배치한 진영으로, 대각선 구도를 보여 정적인 화면에 운동감을 부여하였다. 근엄하면서도 녹색 돋을 선을 사용하여 옷 주름과 문양을 표현하였으며, 왼쪽 어깨에 매듭을 지어 걸친 선홍색 가사에는 금색 문양이 화려하다.

의의와 평가

벽암존자의 진영은 19세기 경 고승 진영이 정형화되기 이전의 양식으로 돋을 기법을 활용한 선묘 처리나 방형의 금박시문기법, 무릎 위에 놓은 손 표현 등에서 19세기 경의 고승 진영과도 비교되는 매우 독특한 표현 기법을 보여준다. 즉 18세기 후반의 고승 진영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연구 자료적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한국의 초상화: 역사속의 인물과 조우하다』(문화재청, 눌와, 2007)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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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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