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30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수령은 약 500년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높이는 6m, 뿌리 근처의 줄기둘레는 2.4m이다. 수관 폭은 동서 방향이 7.6m, 남북 방향이 6.4m이다. 수세는 좋은 편이나 가지의 밀도가 높고 수관 상층에 고사지가 있다.
줄기는 셋으로 크게 갈라진 후 위로 올라가면서 굵은 가지에서 가는 가지까지 20여 개가 부챗살처럼 위로 뻗어 마치 관목처럼 반구형(半球形)을 나타내고 있다. 동백나무는 숲을 제외하고 단목으로 지정된 사례가 없는데, 지금까지 조사된 동백나무 가운데 가장 굵고 크며, 수세가 아름답고 좋아 동백나무를 대표하는 가치가 있다.
나무의 남쪽 약 1m 거리에는 지름 50㎝ 정도의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아서 생육공간을 확보했으며 뿌리 근처에는 20㎝ 이상의 복토 흔적도 있다. 나무와 금사정 건물 사이의 거리가 가깝지만 답압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줄기에도 공동이나 충전처리 한 부위가 전혀 없다. 금사정 주변에는 대나무가 심어져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앞쪽으로는 경작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나무가 위치한 금사정(錦社亭)은 1520년대 말부터 1530년대 초쯤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1519년(중종 14)에 조광조(趙光祖, 1482∼1519) 등의 구명 상소를 올렸던 나주 출신 태학관 유생 11명은 중종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바로 고향으로 귀향해 은거하게 된다.
이들이 낙향한지 10여 년이 지난 후 이곳에 금사정을 짓고 금강 11인계를 조직하여 정치의 비정함을 한탄하고, 후일을 기약하면서 변치 않는 절개를 상징하는 동백나무를 심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