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30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수령은 약 400년으로 추정된다. 나무 높이는 5.5m, 뿌리 근처의 줄기둘레는 1.7m이다. 수관 폭은 동서 방향이 7.6m, 남북 방향이 8.4m이다.줄기는 지상 85㎝ 높이에서 남북 방향으로 갈라졌는데, 북쪽 줄기둘레는 86㎝, 서쪽 줄기둘레는 75㎝이다.
가지가 사방으로 펼쳐져 나무 모양은 높이보다 폭이 넓은 반구형(半球形)을 이루고 있지만 보는 방향에 따라 수관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 나무는 마을 입구의 농가에 접해 있다. 북쪽으로는 축사가 이어지며 남쪽도 지면을 절개하고 ‘宣武原從一等功臣羅州吳公得隣紀蹟碑’라고 새겨진 오득린(吳得隣) 장군의 기적비(紀蹟碑)를 세웠기 때문에 생육공간이 옹색하고 환경도 불량한 편이다.
이러한 생육환경에도 불구하고 호랑가시나무의 수세는 좋은 편이다. 또 가지를 잘라낸 흔적이 여러 군데 보이고 뿌리 근처 부근을 비롯한 몇 군데에는 작은 원형의 충전처리 부위도 있다. 지금은 이 호랑가시나무와 팽나무 10여 주만이 작은 숲으로 남아있다.
근원 주위에는 높이 1m, 너비 2.5m, 길이 5m의 사각형으로 벽돌석축을 쌓고 안에는 적어도 1m 이상 흙을 채웠다. 높이 약 50㎝의 화강암 울타리로 보호하고 있으나 출입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나무 앞은 마을 광장으로 조성되어 주차 공간과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마을회관 뒤쪽은 마을 진입로와 연결되는데, 가로로 작은 마을 숲이 조성되어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호랑이가 등이 가려우면 이 나무의 잎 가시에다 문질렀다는 유래가 있는 나무지만 이곳의 호랑가시나무와 직접 관련되는 전설 등은 알려진 것이 없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과거 마을 지형의 풍수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하였던 비보숲의 일부라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을 도와 큰 공을 세운 오득린 장군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심었다 하며, 마을의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의 지세에서 오른쪽 지세가 약하다 하여 마을 입구에 숲을 만들었다고 한다. 전북 부안의 호랑가시나무 군락과 광주광역시의 노거수 1주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나 이처럼 큰 나무는 찾아보기 어려워 호랑가시나무를 대표할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