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1월 13일에 천연기념물로 승격되었다. 수령은 약 500년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높이는 12m, 가슴높이의 둘레는 3.34m이다. 수관 폭은 13m에 달한다.
국내 모과나무 중 규모가 크고 수형과 생육상태도 양호하여 생물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문화적 가치가 큰 나무이다. 2013년에 적성병(赤星病)이 발병하여 피해가 있었으나 현재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앞으로 주기적인 점검과 병충해 방제가 필요하다.
연제리 모과나무는 서산류씨 문중의 류윤(柳潤)이 조선 세조 등극 초기에 이곳에 은거하면서 세조의 출사에 불응하였는데, 구구한 변명은 하지 않고 이 모과나무를 가리키며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뜻을 밝혀 전하였다고 한다. 이때 세조가 친히 ‘무동처사’라는 어서를 하사했다는 유서 깊은 나무이다.
모과나무 열매는 목과, 명려, 명사 등으로 부르는데, 과일 중 가장 못생겼다고 하여 흔히 못생긴 사람을 모과에 비유한다. 모과나무가 우리나라에서 과수로 재배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허균(許筠)이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경북 예천이 주산지임을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