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265년(원종 6)에 명본대사에 의해 대장암(大藏庵)이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던 것을 1364년(공민왕 13)에 나옹화상이 중창하면서 청룡사라고 개칭했다고 한다. 사찰에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금동관음보살상도 중창 당시에 조성됐을 가능성이 있다.
달걀형의 갸름한 얼굴에 화려하게 장식된 높은 보관을 쓴 관음보살상으로 전형적인 14~15세기의 조각이다. 보관 속의 머리는 뭉툭한 상투처럼 높게 묶었고, 나머지 검은 머리카락이 굵은 가닥으로 양쪽 어깨 위에 흘러내렸다. 이러한 머리 모양은 중국 당대에 유행하기 시작해서 우리나라로 전해진 오랜 전통을 따른 것이지만 크고 호화로운 보관은 고려 후기에 더해진 요소이다.
달걀형의 얼굴 하단, 입과 턱 주위에 살집을 표현하여 후덕한 인상을 준다. 가늘게 내리뜬 눈과 아래로 처진 눈썹, 알맞은 높이의 코와 작은 입술은 고려 후기 불교조각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어깨가 좁고 가파르게 내려갔으며, 가슴과 배에 약간의 양감이 있어서 여성의 신체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14세기 보살상의 특징이다. 가늘고 섬세하며 여성적인 손은 부드럽고 섬세하게 보인다. 두 손 모두 엄지와 중지 손가락을 맞댄 채, 오른손은 위로 들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취했다. 이러한 수인은 원래 아미타불의 수인이지만 보살상에도 자주 적용되었다. 가슴에는 세 줄의 장식이 늘어진 목걸이를 했는데 영락이 옷 위로 표현되지는 않았다. 두 어깨에 걸친 옷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렸고, 무릎의 윤곽을 강조하는 것처럼 다리 위의 옷 주름은 옆으로 누운 8자처럼 처리되었다.
단정하고 아담한 신체 묘사, 얼굴과 다리, 신체의 곡선적인 양감 처리, 세부가 살아있는 이목구비, 복잡하고 화려한 보관과 귀 옆으로 늘어진 장식이 위로 솟구치듯이 과장된 점에서 1415세기, 고려 말조선 초의 보살상들과 친연성을 보인다. 보관은 후대에 다시 만들어 씌웠다고 하지만 고려의 보살상도 비슷한 형태의 보관을 쓰고 있어서 유사한 예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입체감 있는 안면 묘사, 작고 가는 눈과 둥글게 휘어있는 눈썹, 좁고 가파른 어깨를 가졌으면서도 인체의 양감이 보이는 점, 상대적으로 긴 허리와 두툼한 두 다리에서 고려시대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274년의 발원문이 있는 개운사(開運寺)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1447년에 중수된 파계사(把溪寺) 목조관음보살좌상이 청룡사 금동관음보살좌상 편년에 좋은 참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