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보살상은 높이 80㎝, 무릎 폭 52.5㎝. 영국사 대웅전 불단에 모셔진 삼존상 중 향좌측(向左側)의 보살상이다. 본존상과 좌협시상은 근래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들 삼존상이 각각 앉아 있는 대좌는 모두 솜씨가 같은 것으로, 특히 본존상이 앉아 있는 연화대좌 면에 1711년의 묵서명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불상과 함께 조성되었던 대좌로 보인다. 따라서 원래 대웅전에 삼존상이 봉안되었고, 이후 본존상과 협시상 1구가 결실되고 보살상 1구만 남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사찰측의 전언에 의하면 이 보살상은 이전에는 향우측(向右側)에 봉안하여 오다가 근래에 향좌측(向左側)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목조보살좌상은 보관과 대좌 등이 모두 완비되어 있다. 불상의 밑면에는 복장공이 있으나 복장물은 모두 결실되고 최근에 납입된 복장물만 들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목조보살좌상은 무릎 앞을 붙여서 조각한 기목조 기법의 상으로 결가부좌한 다리의 측면 폭이 넓다. 머리는 상투를 높게 틀어 올리고 높은 보관을 쓰고 있으며 나머지 머리는 어깨에 늘어뜨렸다. 보관은 나무로 골격을 조각하고 화염문과 화문장식 등은 금속판으로 오려 붙여서 크고 화려하며 양옆으로 관띠가 날리고 있다. 얼굴은 둥근 편으로 상호가 단정한데 눈을 내리뜨고 코가 오뚝하며 입가는 위로 올라가 미소 짓고 있다.
신체의 비례는 어깨 너비와 무릎의 너비가 적당하며 상체가 길쭉한 편이다. 대의는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고 속에 편삼을 걸친 착의법으로 가슴에는 승각기의 윗단이 수평으로 장식되어 있다. 다리를 덮는 주름은 다리 가운데서 양옆으로 힘차게 벌어져 있다. 오른발은 엄지발가락만 내놓고 나머지 발끝은 덮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전체적인 조각 양식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아한 형태 등이 18세기 전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보살상의 복장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대신 1702년과 1711년이라는 연대가 다른 묵서명이 보살상의 대좌가 아닌 본존상의 대좌에 적혀 있다. 그러나 보살상들의 대좌에도 각기 좌, 우의 묵서명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삼존상이 함께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연대의 묵서명이 있지만 아마도 삼존상은 1711년에 수화원(首畵員)인 여찬을 필두로 벽한, 취습 등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찬은 18세기 전반에 활약한 조각승으로 안성 칠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서울 봉은사 목사천왕상 등의 조성에도 참여하였다. 시왕상은 2009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으로, 서울 봉은사 목사천왕상은 200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목조보살상의 복장기가 전하지 않고 또 대좌의 묵서명에 이 불상을 조성한 사찰명이 적혀있지 않지만, 이 보살상과 대좌 3구는 영국사 대웅전 건물과 함께 전해온 유물들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 보살좌상은 양식이 단아하여 18세기 전반의 불상 양식을 잘 보여주는 상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