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상 ()

무령왕릉 출토 유리동자상
무령왕릉 출토 유리동자상
조각
개념
불교의 청정한 세계를 표현하는 나이 어린 인물의 불교 예배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동자상은 불교의 청정한 세계를 표현하는 나이 어린 인물의 불교 예배상이다. 사찰 명부전의 시왕상 좌우에 시자 형상으로 봉안된 선악동자상이 가장 많다. 선악동자는 사람의 생전 선업·악업을 기록해 두었다가 사후에 시왕에게 고하는 역할을 한다. 어두운 명부에 속해 있으면서도 밝음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동자상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작은 유리제동자상이다. 그 외에 다수의 동자상이 전하는데 오대산 상원사의 목조문수동자상이 대표적이다. 동자상은 아름답고 순수한 자태와 다양한 지물 표현 등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의
불교의 청정한 세계를 표현하는 나이 어린 인물의 불교 예배상.
개설

동자상은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불교의 청정한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상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선재동자(善財童子), 문수보살보현보살이 각각 화현한 문수동자(文殊童子)와 보현동자(普賢童子), 그리고 명부(冥府)와 연관된 선악동자(善惡童子) 등은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중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예는 조선시대 17세기 이후 불교사찰의 명부전에서 시왕상의 좌우에 시자(侍子) 형상으로 봉안된 선악동자상이다. 선악동자상은 소조나 나무로 조성되는데, 어린 소년이나 소녀의 모습으로 머리는 쌍계(雙髻)와 길게 따은 머리가 섞여 있고, 손에는 두루마리, 붓, 벼루, 봉황, 호랑이, 자라, 수박 등 다양한 지물을 들고 있다. 불교의 예배상 중에서 동자상은 특히 아름답고 순수한 자태와 다양한 지물 표현 등으로 인하여 주목받는 상이다.

연원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동자를 4세에서 20세 미만의 아이로 특히 스님이 되고자 머리를 깎고 수행하는 자로 정의하면서, 세속에 물들지 않은 동자와 같은 경지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외에도 『화엄경』, 『유행경(遊行經)』, 『예수시왕생칠경(預修十王生七經)』 같은 불경에는 많은 동자들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경전의 내용을 배경으로 선재동자, 문수동자, 보현동자, 그리고 선악동자 같은 여러 유형의 동자상이 불화나 조각상으로 조성되었다.

현황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동자상은 삼국시대 백제무령왕릉에서 쌍으로 출토된 2.5㎝ 정도의 작은 유리제동자상이다. 이는 왕비가 생존시에 수호신격으로 옷에 부착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통일신라시대의 예는 많지 않아서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에서 본존상의 무릎 옆에 부조된 합장을 하고 있는 작은 동자상을 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대표적 동자상은 14세기에 유행한 수월관음도 불화에 보이는 선재동자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는 보타락가산의 관음을 친견하는 선재동자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귀여운 어린아이의 형상으로 허리를 굽혀서 양손을 합장하고 법을 듣고 있는 자세로 그려지고 있다. 조각상은 드물어서 금강산에서 출토되어 현재 평양 중앙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금동수월관음상과 함께 조성된 금동동자상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다수의 동자상이 전하는데,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상은 오대산 상원사의 목조문수동자상이다. 세조오대산에서 문수동자를 친견한 후에 왕실 발원으로 조성된 상이다. 불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하여 세조 12년(1466)에 의숙공주(懿淑公主) 부부에 의해서 조성된 상임이 밝혀졌다. 이 상은 크기가 98㎝인 대형 상으로 문수보살이 동자로 화현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복스러운 얼굴과 당당한 자세, 그리고 화려한 장신구 등이 귀족적이면서도 기품있는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앞머리가 이마에 내려지고 쌍계를 한 머리 형태를 제외하고는 전형적인 예배상으로서의 보살상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조선 초기 왕실 발원의 불상의 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상이다.

사찰의 문에도 문수동자상과 보현동자상이 각기 사자와 코끼리의 등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봉안되는 예가 있다. 1473년 건립된 도갑사 해탈문의 문수동자상과 보현동자상은 크기가 1.8m에 이르는 대형 목조상으로 조각도 뛰어난 대표적인 예이다. 조선 후기에는 동자상이 다수 전하는데, 대부분 명부전에 봉안된 소조나 목조로 만들어진 소형의 동자상들이다. 왜란호란 이후 화엄사, 해인사 같은 대규모 사찰들이 중창되는 과정에서, 당시에 일반 신도들의 사찰 출입과 관련하여 중요한 전각으로 부각되었던 명부전이 크게 건립되면서 조성된 상들이다.

완주 송광사 명부전의 소조동자상은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가장 이른 예이다. 지장보살상에서 발견된 복장문에 의하여, 1640년에 명부전의 다른 존상들과 더불어 일괄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8구가 전하는데 시왕상의 앞 쪽으로 각 상 사이에서 시자(侍子) 형상으로 봉안되어 있다. 크기가 97㎝∼116㎝ 정도의 비교적 큰 상으로 신체 비례가 길고 자세가 자연스러워서 동녀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머리는 쌍계와 길게 땋은 머리가 섞여 있고, 지물로는 봉황, 명부, 수박, 호랑이, 책 등을 들고 있고 나머지 상은 지물이 없어졌다.

완주 송광사에서는 나한전에서도 동자상을 볼 수 있는데, 나한의 주위에서 놀고 있는 귀여운 모습으로 지물은 들고 있지 않다.

영광 불갑사 명부전에도 동자상이 6구 전하는데, 시왕상에서 발견된 조성문에 의하여 1654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상들은 목조상으로 전체 크기가 1m 내외의 비교적 큰 상이며, 얼굴이 통통하여 동녀상 같은 분위기가 난다. 지물은 3구가 연봉가지를 들었고, 그 외에는 각기 책과 벼루, 붓을 들고 있다. 이와같이 송광사와 불갑사의 동자상은 조각이 훌륭하고 조성시기도 분명하여서 17세기 중엽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상들이다.

이후 18세기와 19세기에도 고성 옥천사, 수원 용주사, 진도 쌍계사 등 여러 사찰의 명부전에서 다양한 형상의 동자상이 남아 있다. 이들은 모두 어린 소년이나 소녀의 모습으로 머리는 쌍계와 길게 따은 머리가 섞여 있고, 손에는 두루마리, 붓, 벼루, 봉황, 호랑이, 자라, 수박 등 다양한 지물을 들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상과 같이 동자상은 특히 조선 후기에 다수 조성된 명부전 동자상은 기본적인 도상이 『예수시왕생칠경』에 보이는 선악동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악동자는 사람의 생전에 선업과 악업을 그대로 기록하여 두었다가 사후에 시왕에게 고하는 등 재판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즉 명부의 동자는 현실과 사후의 세계를 왔다갔다 하는 신령에 속한 존재라는 점이 기본적인 종교적 특성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명부의 동자상에는 구법동자인 선재동자의 도상이 일부 합쳐지고 있는데, 이로 인해 동자상의 미적 장점인 애때고 순진하고, 해맑고, 야무지고, 또는 명철해 보이기도 하는 다양한 표현이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선시대 동자상은 어두운 명부에 속해 있으면서도 밝음을 갖는 독자적인 특성을 지니게 된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동자상은 지물의 다양한 변형을 이루면서 명부와 관련된 보다 풍부한 종교적 상징성을 담고 있는 상이다.

참고문헌

『불교동자상』(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도록, 2003)
『전국사찰등소장동자상조사보고서』(문화재관리국, 1991)
「불교경전에 나타난 동자상」(임진광,『불교동자상』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도록, 2003)
「조선시대 불교동자상」(김춘실,『불교동자상』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도록, 2003)
집필자
김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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