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송광사 나한전 목조 석가여래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 ( )

완주 송광사 오백나한전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
완주 송광사 오백나한전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
조각
유물
국가유산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송광사 나한전에 봉안되어 있는 1656년 조각승 무염이 제작한 목조석가여래삼존불좌상과 나한상 등.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송광사오백나한상 일괄
분류
유물/불교조각/목조/불상
지정기관
전북특별자치도
종목
전북특별자치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99년 04월 23일 지정)
소재지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569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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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송광사 나한전에 봉안되어 있는 1656년 조각승 무염이 제작한 목조석가여래삼존불좌상과 나한상 등.
개설

보물. 불상의 높이는 석가여래(본존) 192㎝, 제화갈라보살(우) 181㎝, 미륵보살(좌) 181㎝. 송광사 나한전에는 석가여래좌상을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협시하는 석가여래삼존상과 16나한상, 좌우 제석, 좌우 장군 등을 포함하여 526구의 존상들이 있다. 이 존상들 중에서 출토된 발원문을 통해 1656년(효종 7)에 무염을 포함한 30명의 조각승들이 이 존상들을 조성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용 및 특징

본존인 석가여래좌상은 어깨가 넓고 허리가 긴 장대한 체구를 보인다. 석가여래좌상은 육계의 구분이 없는 둥근 형태이다. 머리의 중앙에는 반원형에 가까운 중간계주가, 정상에는 원통형의 정상계주가 조각되어 있다. 석가여래좌상의 상호는 넓은 미간, 두툼하게 솟은 눈두덩이, 반개한 눈과 오뚝한 코,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입술로 구성된다. 착의법은 대의를 걸친 편단우견식으로 착의하여 오른쪽 어깨를 가렸지만 오른팔은 드러나 있다. 가슴을 가린 승각기는 살짝 주름이 잡혀 있으며 하반신에는 좌우 4가닥씩의 큰 주름이 펼쳐져 있다.

좌우 협시보살좌상의 착의방식은 이형대칭으로, 좌측 미륵보살은 승각기 · 편삼 · 대의를 걸친 가사를 걸쳤고, 우측 제화갈라보살은 천의를 입고 하반신에는 각대를 착용하고 있다. 좌우 협시는 모두 보상화문, 화염, 구름문양으로 장식된 보관을 쓰고 있고, 귀걸이와 팔찌를 두르고 있다. 좌측 미륵보살의 상호는 본존과 비슷하지만 두상을 타원형으로 조각하였고, 우측의 제화갈라보살은 방형의 얼굴에 눈두덩이와 양 볼의 양감이 훨씬 줄어들었고 눈 윗꺼풀을 길게 표현하였다.

16나한상은 암석 대좌 위에 결가부좌, 반가좌, 유희좌 등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나한상들은 해태, 호랑이, 학, 용, 코끼리 등과 같은 서수나 동자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다. 좌우 제석은 보관을 쓰고 소매가 긴 포를 입고 조끼와 같은 하피(霞帔)를 걸쳤다. 길게 흘러내린 소맷자락은 좌우의 동자들이 들고 있다. 좌우 사자는 모두 갑옷을 입고 있는 무장의 모습이다. 좌측 사자는 해태 얼굴이 새겨진 두건을 쓰고 있으며, 오른쪽 사자는 뿔이 2개 솟은 듯한 모자를 쓰고 있다. 나한전 벽면에는 20~40㎝ 크기의 나한상들이 빼곡히 배치되어 있다.

나한전 존상들을 제작한 조각승들은 무염(無染), 현준(玄准), 수화원(首畫員) 계훈(戒訓), 사인(思印), 성순(性淳), 태신(太信), 법기(法器), 희순(熙淳), 각선(覺善), 경희(敬熙), 단응(丹應), 천신(天信), 도균(道均), 해정(海淨), 삼응(三應), 도심(道心), 행민(行敏), 인경(印冏), 법행(法行), 선문(善文), 충학(冲學), 의종(議宗), 심민(心敏), 성환(性環), 사인(思忍), 지수(智修), 각림(覺林), 충행(冲行), 옥현(玉玄), 행주(行珠)이다. 가장 앞에 이름이 언급된 무염은 17세기 전반기 활발한 활동을 했던 조각승이다. 무염은 1630년대부터 수화승으로 활동한 기록들이 남아있다. 그가 조성한 대표적인 불상들은 1633년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1635년 영광 불갑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1650년 대전 비래사 목조비로자나불좌상, 1651년 속초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및 목조지장보살삼존상, 1654년 영광 불갑사 명부전 권속, 1656년 완주 정수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등이다.

나한전 존상을 제작한 조각승들 중 도균은 1648년 해남 도장사 석가여래 제작 때 10번째 조각승으로 무염과 함께 참여한 기록이 전하고 있어 무염 집단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나머지 조각승들, 특히 단응, 천신, 삼응, 사인 등은 비슷한 시기 활동하던 다른 조각승 집단에 소속된 승려들이다.

단응은 17세기 후반~18세기 초반 활동한 조각승이다. 그가 조성한 주요 불상들은 1684년 경상북도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대장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및 명부전 존상, 1689년 충청북도 제천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좌상, 1689년 경상북도 성주 선석사 아미타삼존불좌상, 1692년 안동 봉황사 삼세불좌상, 1705년 하동 쌍계사 사천왕상이다. 나한전 석가삼존 중 향우측 제화갈라보살은 단응의 작풍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화갈라보살의 눈 윗꺼풀을 과장되게 표현한 상호 및 무릎에 두른 각대의 표현은 1684년 예천 용문사 목조관음보살좌상에서 보이는 표현과 유사하다. 이를 통해 제화갈라보살은 단응이 주도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신은 1655년 인균과 흥국사 석가삼존불좌상을 조성했고, 1668년에 금탑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을 중수한 기록이 남아있다. 삼응은 승일과 1651년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1665년 송림사 명부전 존상, 1668년 김천 직지사 비로자나삼불좌상을 작업을 하였고, 1670년에는 김천 봉곡사 석조석가여래좌상을 조성하였다. 사인(思忍)은 1639년 수연과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1649년 회문산 만일사 목조석가불좌상(현 포천 동화사 봉안)을 조성하였으며 송광사 나한전 존상 발원문에서 수화승(首畫員)으로 언급된 계훈과 완주 송광사 원패를 제작하였다.

참여 조각승들의 이러한 활동을 통해 완주 송광사 나한전 존상 조성 불사는 무염 집단, 인균 집단, 수연 집단, 승일 집단 등에 속했던 조각승들의 합동작업으로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완주 송광사 나한전 존상들에서 출토된 발원문에는 총 30여 인의 조각승의 이름들이 확인된다. 참여 조각승들 중에서는 원래 무염의 조성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조각승들의 이름도 확인된다. 무염집단에 속하지 않았던 조각승들은 같은 시기 활동하던 인균, 수연 및 승일 집단에 속했던 조각승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조선 후기 조각승 집단들 사이의 합동작업 및 교류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그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조선시대 기록문화재 자료집』Ⅱ((사)한국미술사연구소, 2012)
「송광사 오백나한전의 나한상」(박도하, 『강좌미술사』13, 한국불교미술사학회, 1999)
집필자
조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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