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불상 높이는 아미타불좌상 92㎝, 관음보살 81㎝, 대세지보살 81㎝. 주존인 석조삼존불좌상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협시보살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로 이루어져 있다. 아미타불 내부에서 조성발원문이 발견되어 삼존불이 1691년(숙종 17)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미타불좌상이 협시보살보다 약간 큰 것으로 보아 존격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래와 보살이라는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삼존상은 신체 비례, 얼굴 표정, 수인 및 옷주름 표현 등에서 유사점이 발견된다.
아미타불좌상은 높이가 92㎝인 중형 불상으로, 오른손을 무릎에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하였고, 왼손 손바닥을 위로 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머리에는 육계가 불분명하고, 반원형 중앙계주와 원통형 정상계주가 빼곡한 나발들 사이에 조각되어 있다.
머리는 갸름한 계란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얼굴은 반개한 눈, 우뚝 솟은 코, 넓은 인중과 양 끝이 살짝 올라간 입술로 구성된다. 원래 목 아래의 삼도(三道)는 두 줄만이 명확하게 새겨져 있다. 아미타불좌상은 승각기, 대의를 걸친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 착의법을 따르며 옷주름은 간략한 선으로만 표현되었다. 가슴 중앙의 승각기는 가지런히 주름이 접힌 형태이고, 하반신에는 좌우 3가닥씩의 큰 주름이 대칭으로 펼쳐져 있다. 보살상은 높이가 81㎝로, 보관을 쓰고 어깨까지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조각된 것을 제외하면 아미타불과 상호와 수인 그리고 옷주름의 표현이 동일하다.
아미타불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는 불상의 제작 시기와 불상 조성과 관련한 복장지(腹藏紙), 황금(黃金), 등촉(燈燭), 천(布) 등 여러 물목의 시주자 관련 기록은 확인되지만 불상 조성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연화질(緣化秩)이 쓰여 있던 뒷장이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미타불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기록된 승려 3인과 속인 21인의 이름은 조선 후기 불교 후원자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불상 발원문 구성과 달리 불상 원봉안처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가 없고, 불상이운대시주(佛像移運大施主)가 발원문의 문두에 나오는 점을 보면 불상의 조성지와 봉안처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보현사 석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경북 지역에서 활동한 조각승 승호나 그 계보에 속한 작가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아미타삼존불좌상 재료가 불석(佛石)임을 고려한다면 경상북도 김천 직지사 천불(千佛)이나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 천불처럼 경주에서 조성이 된 이후에 원래 봉안처로 옮겨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조선 후기 불상의 제작 및 이운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써 그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