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지장보살좌상(본존) 88㎝, 도명존자(좌) 134㎝, 무독귀왕(우) 124㎝. 김룡사 명부전에는 목조지장보살삼존상 외에도 시왕상 및 하부 권속들을 포함한 21구의 존상들이 봉안되어 있고, 동자상들 4구는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있다. 무독귀왕 내부에서 발원문이 발견되어 이 불상들이 1714년에 제작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김룡사 명부전은 사찰의 중심 권역에서 동편으로 떨어진 별도의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에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명부전은 1714년에 담유(曇裕)와 탁밀(卓密)에 의해 중창되었다.
명부전에는 나무로 만든 지장삼존상(3구), 시왕(10구), 귀왕상(2구), 판관상(2구), 사자상(2구), 인왕상(2구)이 ⊓모양의 불단에 좌우대칭으로 봉안되어 있다. 명부전에서 시왕의 배치는 통상적인 방식대로 향우(向友)측에 1 · 3 · 5 · 7 · 9의 홀수대왕을, 향좌(向左)측에 2 · 4 · 6 · 8 · 10의 짝수대왕을 두었다.
결가부좌한 지장보살좌상은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린 모습이다. 양손은 동일하게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결하고 있다. 지장보살은 둥글고 넙적한 얼굴에 두툼한 귓불을 가진 모습으로 조각되었다. 반개한 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 예배자들과 직접적인 시선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눈썹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콧대는 반듯하고 콧날은 오뚝하다. 얇은 입술의 양 끝을 살짝 올려 옅은 미소를 만들었고, 턱도 두툼하여 엄숙하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풍긴다.
지장보살좌상은 승각기, 편삼과 대의를 걸친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 착의법을 따른다. 승각기와 전신을 덮는 대의 자락을 모두 간결한 선으로만 처리하였다. 특히 복부 부근에 좌우대칭을 이루는 ‘W’ 형태의 옷주름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좌우 협시인 도명존자 · 무독귀왕을 비롯한 권속들의 상호 표현은 지장보살좌상과 거의 같지만, 지물이나 착의 형식은 각각의 성격에 따라 달리 표현하였다. 젊은 승려 모습으로 표현된 도명존자는 가사와 장삼을 걸치고 합장하였고, 무독귀왕은 양관(梁冠)을 쓰고 붉은색 단령포를 입고 보함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무독귀왕과 유사한 옷차림의 시왕상은 의자에 앉아 홀을 받쳐 들거나 책을 펼쳐 보고 있는 모습이다. 시왕상은 표정이 없거나 미소를 짓거나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등 다양한 상호로 조성되었다.
하부권속은 귀왕, 판관 사자상들이 두 구씩 남아있다. 귀왕은 시왕들과 같은 양관을, 판관은 복두(幞頭)를 쓰고 양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귀왕과 판관은 시왕의 판결을 돕는 하부 권속들로 시왕도나 경전의 변상도에 주로 시왕 주위나 뒤에 배치된다. 불단 아래에는 장군상과 사자상이 각각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투구와 갑주를 두른 장군상은 한 손을 들어 내려칠 듯한 자세로 조각되었고, 향좌측에 위치한 사자는 지물로 창을 들고 있다.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봉안 중인 4구의 동자상들은 해태 형상의 서수(瑞獸)와 노는 모습, 벼루를 들고 있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조각되었다.
김룡사 명부전 무독귀왕에서 발견된 발원문에는 명부전 존상들의 제작 시기가 1714년(숙종 40)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불상들을 조성했던 조각승 집단에 대한 언급은 없다.
김룡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등은 임진왜란 이후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조선 후기 조각승 집단의 불상 조성 경향을 반영하는 존상이다. 무독귀왕에서 발견된 발원문에는 존상을 조성한 승려 이름이 기입되는 연화질(緣化秩)이 없어 조성에 참여했던 조각승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명부전 화주인 탁밀을 통해 김룡사 명부전에 관여했던 조각승 집단이 단응 · 탁밀에 속한 조각승들로 추정할 수 있다. 단응과 탁밀 집단이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명부전 존상들은 의성 고운사(1670년), 안동 광흥사(1692년), 문경 대승사(18세기)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