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사 소조 십육나한상 ( )

조각
유물
문화재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사의 나한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16나한상.
정의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사의 나한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16나한상.
내용 및 특징

진관사 나한전에는 석가삼존불상을 좌우로 해서 각각 8구씩의 나한상 16구 · 제석상 1구 · 사자상 1구 · 금강역사상 2구 등 총 20구의 상이 봉안되어 있다. 모두 소조상(塑造像)으로 근년에 새로 채색을 하였지만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인 1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는 나한상 16구가 41~46㎝, 제석천상 1구 73㎝, 사자상 1구 78.3㎝, 금강역사상 2구가 102.5~103㎝이다. 각 상의 존명은 묵서(墨書)로 기록되어 있다. 총 16구 가운데 ‘제4 소빈다존자(第四 蘇頻陀尊者)’, ‘제6 발다라존자(第六 跋陀羅尊者)’, ‘제8 불다라존자(第八 弗多羅尊者)’, ‘제12 나가서나존자(第十二 那伽犀那尊者)’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명칭은 당 현장(玄奘)이 645년에 번역한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의 명칭과 일치한다. 진관사 나한전에 봉안된 16나한상은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각 상의 모습은 자유자재하면서도 해학적이다. 젖가슴을 노출한 착의법, 나이 든 신선 같은 표정, 거울을 바라보거나 등긁개로 등을 긁는 모습 등에서 해학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16존자는 대부분 정면을 향하고 있지만, 측면을 바라보는 상도 있다. 얼굴 표현법을 통해 연령이 많은 노인 모습의 나한과 장년 및 청년 모습의 나한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진관사 16나한상에서 주목되는 것은 다양한 지물(持物)인데, 연꽃 · 부채 · 용 · 보주 · 경전 · 붓 · 석장 · 거울 · 등긁개 · 학 · 해태 등이 있다. 지물을 들고 있지 않은 상은 합장 하거나 선정(禪定)에 든 모습, 무릎 위에 손을 얹거나 등을 긁는 모습 등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외에도 보관을 쓴 보살형의 제석천상, 명부전에 안치되는 사자상 및 금강역사상도 함께 봉안되어 있다. 16나한상은 표정과 자세가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해학적인데 불교조각의 엄격하면서도 규격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초상조각과 같이 개성적이고 활달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진관사 소조 16나한상은 17~18세기에 조성된 지리산 천은사 · 완주 송광사 · 고성 옥천사 · 부안 개암사의 16나한상 등과 비교된다. 이들 나한상에 비해 역동감이 부족하고 다소 섬약하지만, 조선 후기에 제작된 16나한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복장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확실한 조성 연도는 알 수 없다. 그러나 1884년에 나한전을 중창하였고 이때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 16나한도(十六羅漢圖) · 제석신중도(帝釋神衆圖) · 사자신중도(使者神衆圖) 등을 제작하였는데 16나한상 역시 이 시기에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한국의 사찰문화재 전국사찰문화재일제조사 서울특별시』(문화재청·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 2013)
「서울 진관사 소조십육나한상의 제작 시기와 제작자의 추론」(김희경, 『불교미술사학』7, 2009)
『진관사, 진관사의 역사와 문화』(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 2007)
집필자
유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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