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조계사 석가불도 (서울 )

조계사 석가불도
조계사 석가불도
회화
유물
국가유산
서울특별시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 봉안된 근대의 영산회상도.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조계사 석가불도(曺溪寺 釋迦佛圖)
분류
유물/불교회화/탱화/불도
지정기관
서울특별시
종목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유산(2000년 07월 15일 지정)
소재지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55 (견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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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 봉안된 근대의 영산회상도.
개설

200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면 바탕에 채색.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로서, 1938년에 금용 일섭(金蓉 日燮)과 송파(松坡), 보경(寶鏡)이 함께 조성하였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의 중앙에는 키[箕]형의 광배 안에 석가모니가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결가부좌하였고 석가모니의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 등 좌우 협시를 비롯하여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비롯한 10대 제자, 문수보살, 보현보살, 범천, 제석천 등이 본존을 둘러싸고 있다.

내용

키형의 광배를 배경으로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가모니는 둥근 얼굴에 이목구비가 작게 표현되었으며, 나발의 머리에는 육계가 높이 솟아 있다. 신체는 건장한 편으로 오른쪽 어깨를 완전히 드러낸 우견편단의 착의법을 하고 있는데, 붉은 법의 아래로는 녹색의 승각기 일부가 드러나 있다. 오른손은 손가락을 가지런히 하여 무릎 아래로 내렸으며, 왼손은 배 부근에 대어 손바닥을 위로 하여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있다. 얼굴은 단정하며 신체의 적절한 비례를 통해 안정감을 느낄 수 있으며 자연스러운 음영 처리가 돋보인다. 석가모니는 키형의 광배로 인해 위풍당당해 보이며, 신광 주위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듯이 표현된 채운과 신광 내부의 방사형 빛으로 인해 본존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석가모니 앞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하였으며, 좌우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범천과 제석천,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비롯한 10대 제자 등이 신광의 주위를 따라 배치되었다. 권속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작게 묘사되어 상승감을 느끼게 하며, 특히 두광 좌우의 제자들은 음영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입체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느낌을 준다. 화면 하단 좌우에는 사천왕이 각각 2구씩 배치되었는데, 향우측 천왕은 비파와 칼, 향좌측 천왕은 보탑 · 용 · 여의주를 들고 있는 등 전통적인 도상을 그대로 따랐다.

이 불화의 수화승인 금용 일섭(1900~1975)은 근대기의 대표적인 불화승으로, 충청남도 계룡산 마곡사(麻谷寺)를 중심으로 한 마곡사 화파(畵派)의 금호당 약효와 보응 문성의 화맥을 이어받아 일생동안 불화 뿐 아니라 단청과 조각, 개금 등 다방면에서 많은 활동을 하면서 500여 점에 이르는 많은 불화를 남겼다.

의의와 평가

근대 불화계를 대표하는 수화승 금용 일섭(金蓉 日燮)이 송파(松坡), 보경(寶鏡)과 함께 조성한 석가모니불도이다. 화기에는 ‘총본산태고사대웅전후불탱(總本山太古寺大雄殿後佛幀)’이라고 적혀 있다. 이것은 1910년에 세워진 각황사를 모태로 시작한 조계사가 1937년에 현 자리로 옮긴 후 1938년 삼각산 태고사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태고사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석가불도는 이 때대웅전 후불탱화로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존상의 상호, 의복, 채운 등에 음영법을 사용한 점이라든가 육계의 입체적인 표현 등에서 서양화법을 사용한 20세기 불화 양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찬란한 불교미술의 세계, 불화』(김정희, 돌베개, 2009)
『서울의 사찰불화』Ⅱ(서울역사박물관, 2008)
『서울의 사찰불화』Ⅰ(서울역사박물관, 2007)
『보응·일섭·우일작품선집: 조선불교미술의 맥을 이은 금어들』(통도사성보박물관, 2006)
『서울전통사찰불화』(서울특별시, 1996)
「화승 김일섭의 불화 연구」(신은미, 『강좌 미술사』26,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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