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李滉, 1501~1570)은 조선 전기의 유학자이며, 성균관(成均館) 대사성(大司成), 대제학(大提學), 지경연(知經筵)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성리학 체계를 집대성하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사칠론(四七論)을 주장하였다. 대표 작품에 시조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저서에 『퇴계전서(退溪全書)』 등이 있다.
46권 24책이며, 목판본이다. 원래 목록 2권 2책, 본집 49권 25책, 별집 1권 1책, 외집 1권 1책, 연보 4권 2책 등 총 57권 31책으로 구성되었으나, 현재는 본집 45권 23책[권131, 권3443, 권46~49], 별집 1권 1책[목록, 권1]만 남아 있다. 이 책의 결본(缺本)은 옥산서원(玉山書院)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전기 학자 이황의 문집 초간본이다. 1571년(선조 4)부터 손자 이안도(李安道)와 조목(趙穆)이 역동서원(易東書院)을 중심으로 저자의 유문(遺文)을 수집, 정리하였다.
1573년(선조 6) 선조가 교서관(校書館)에서 간행하도록 명하여 유성룡(柳成龍) 등이 간행을 준비하였으나 결국 간행하지 못했다. 다시 조목을 중심으로 편찬을 계속하여 1600년 도산서원(陶山書院)에서 간행하였다. 경자본(庚子本)이라고도 한다.
『퇴계선생문집』은 『주자대전(朱子大全)』의 체재와 편차를 준용하였으며, 초본(初本), 중본(中本), 정본(定本) 등 여러 차례의 편집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가급적 모든 유문을 망라하고 저작 시기를 밝혔다.
초간본인 탓에 오류가 빈출하며, 심지어 초본(草本)을 판각하였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퇴계선생문집』은 이후 문집 편찬의 전범(典範)이 되었으며, 장기간에 걸친 편찬 과정과 그에 따른 논란은 오히려 문집 편찬 과정의 실상을 보여준다.
2016년 2월 22일 경상북도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 있는 퇴계선생문집 목판(退溪先生文集 木板)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