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죽전유적군은 한국토지공사 용인사업단에서 실시한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기전문화재연구원과 토지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되었다. 대표유적으로는 대덕골유적, 죽전도기가마유적, 완장이골 건물지, 보정리 청자요지, 죽전지구 문화유적 등이 있다.
대덕골유적은 죽전지구의 가장 북쪽으로 광주시 오포면의 문형산을 주봉으로 해서 남서쪽으로 분기된 가지능선의 끝부분에 해당하며 구릉정상의 설상대지를 중심으로 유구가 분포하고 있다. 조사된 유구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5동, 소성유구 1기, 수혈유구 34기, 삼국시대 움무덤 15기, 돌덧널무덤 3기, 조선~근대 분묘 35기, 회곽묘 4기, 가마 1기 등 총 98기이다. 유물은 공열문토기, 구순각목공열문토기, 반월형석도, 원형점토대토기, 직구호, 단경호, 고배, 철부, 철겸, 백자, 분청사기, 청동수저 등이 출토되었다.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돌덧널무덤 3호는 1·2호에 비해 규모가 작고 축조된 석재와 방법에서 차이를 보이며, 출토유물도 없어 조선시대의 태묘일 가능성이 있다. 조선시대의 분묘는 39기가 조사되어 다른 시기 유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점하고 있다.
죽전도기가마유적은 2개의 작은 구릉과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사결과 계곡의 서측 구릉 동사면에서 도기가마 2기, 폐기장 7개소, 돌덧널무덤 2기, 중세 주거지 3기, 분묘 5기가 확인되었다. 계곡 동측의 서사면에서는 탄요 1기, 분묘 3기 등 총 16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도기병과 호, 장군, 분청사기, 관정, 청동수저 등이 출토되었다.
완장이골 건물지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대지로 233 일대에 위치한다. 고려시대 건물지 1개소와 이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배수로, 기단석렬, 조선시대 회곽묘 1기가 조사되었다. 유물은 자기, 도기편, 기와, 묘지석 등이 출토되었다.
건물지는 파괴가 심하여 전체적인 평면을 확정할 수 없지만 담장으로 '日'자형의 평면을 만든 후, 후반부에 건물지 1동을 두었다. 건물지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길이 15m, 너비 8m로 추정된다. 내부시설로는 아궁이 1개소가 서쪽에서 확인된다. 이는 중앙칸에 대한 난방을 목적으로 설치된 아궁이로 판단된다. 한편 담장은 하부 너비 60㎝로 한 단 정도 남아 있다. 양쪽의 장축면이 물길과 접하고 있는 사실로 미루어 축대의 기능도 하였을 것으로 파악된다.
건물지의 사용 시기는 고려 중기부터 조선 전기까지로 볼 수 있으며, 중심연대는 고려 중후기로 파악할 수 있다. 회곽묘는 발굴 전 이미 이장된 상태였다. 피장자는 수습된 11매의 묘지전을 통해 남편이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풍양조씨 부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덤의 축조시기는 조선후기로 파악되었다. 이 무덤은 이장으로 심하게 파손된 상태였지만 목관의 결구흔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 당시 목관제작의 일면을 살필 수 있다.
보정리 청자요지는 불곡산에서 법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중 대치고개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가지능선에 위치한다. 북쪽으로 43번 국도가 지나가고 서쪽으로 1.5㎞ 떨어져 23번 지방도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며, 남쪽으로 독정천이 흘러 서쪽의 탄천에 합류한다. 조사 결과 고려시대 가마 2기, 석렬 12기, 소성유구 1기, 주거지 1기, 구상유구 1기,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석실분 1기, 중·근세 분묘 7기 등 총 25기의 유구를 확인하였다.
청자가마는 경사면을 따라 조성된 등요로 소성실에 격벽 시설을 하지 않은 단실요이며, 규모는 길이 16m, 너비 1.11.4m, 경사도 1015°이며 잔존 깊이는 10~86㎝이다. 가마 구조는 아궁이, 소성실, 연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4회 이상 보수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아궁이의 축조는 대부분 진흙을 사용하였으며 길이 1.7m, 너비 1.1m의 규모에 높이 68㎝의 불턱이 있고 입구는 할석을 이용하여 좁혔다. 가마 조성 초기부터 진흙을 사용하여 축조하였으며 아궁이와 연도에 인접한 소성실 뒤쪽은 할석을 이용하여 조성하였다. 도기가마는 단실의 지하식 평요로 아궁이는 유실되고 소성실과 연도 일부만 남아 있다. 석렬유구는 작업장 시설로 추정되며, 작업도구 및 수비공 역할을 한 도기가 출토되어 생산시설의 존재여부를 증명하고 도자의 생산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의미있는 자료이다.
유물은 청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나 백자도 소량 수습되었다. 기종은 대접, 접시 외 24개 기종으로 다양하며, 백자는 대접, 발, 완, 접시, 잔, 뚜껑만 확인되었다. 유물의 대다수가 일상기명이지만 불교 공양구와 화분 등도 수습되어 주목된다. 특히 보살상과 나한상으로 추정되는 청자 불상은 출토 사례가 매우 드문 편으로, 현재까지 강진 가마터와 함평 용천사지, 강진 용혈사지 등의 절터에서만 확인될 뿐이다.
유적의 연대는 가마 규모나 구조가 부안 진서리, 유천리, 대전 구완동 가마와 유사하고, 출토 유물 중 연판문의 대접, 접시, 통형잔과 압인양각기법의 접시 등이 고려 중기에 유행하던 양식인 점을 고려하면 12세기 무렵으로 추정된다.
죽전지구 문화유적은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35 일대에 위치한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 수혈 24기, 고려시대 도기요지 1기, 조선시대 건물지 3기, 다수의 수혈유구 및 움무덤이 확인되었다. 능선 전체에 침식이 심해 전반적인 유구의 잔존상태가 불량한 편이다. 유물은 광구소호, 고배, 병 등이 출토되었다.
고려시대 도기요지는 전체 길이가 8.5m 정도이고 너비는 가장 넓은 부분이 2m이다. 단면 양상을 보면, 아궁이 부분은 약 15° 정도 경사로 바닥으로 떨어지다가 아궁이가 끝나는 부분에서 약 30° 경사로 배연시설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닥에는 상당기간 사용하여 생긴 두터운 소결층이 형성되어 있다. 이 소결층에서 연대가 11세기 말에서 12세기 초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완 1점이 확인되었다.
용인 죽전유적군은 한강변의 여주 흔암리, 부천 고강동 유적과는 다른 입지 조건을 가진 고지성취락에 속한다. 지금까지 조사된 한강 지류상의 청동기시대 유적 중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이 시기 주거유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또한 동일지역에서 청동기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유구 등이 조사되어 각 시기별 점유 양상과 주변 유적과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