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가수동유적은 아파트 신축공사 과정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지형 상태 및 공사구획을 고려하여 6개 지역으로 구분하였다. Ⅰ지역은 조사지역 서쪽에 위치한 능선에서 이어지는 사면말단부에 해당되며, 조사결과 주거지 3동, 수혈 8기, 건물지 5동 물 막이시설 1개소, 자연수로 3기, 구 1기 등이 확인되었다.
Ⅱ-1지역은 서사면 말단부와 동사면 말단부 사이에 위치하는 곡간부로 중앙 자연수로 동서 양변에 해당된다. 조사결과 주거지 3동, 수혈 8기, 건물지 2동, 저수시설 2개소, 호안시설 1개소, 집수시설 1개소, 목주열 1군, 우물 2기 등이 확인되었다. Ⅱ-2지역은 동사면 말단부로 중앙 자연수로 동변에 해당된다. 주거지 6동, 수혈 11기, 건 물지 1동, 주공군, 자연수로 4개소, 구 6기, 우물 1기, 삼가마 1기 등이 확인되었다.
Ⅲ-1지역은 조사지역 서사면 말단부와 중앙 자연수로의 서변 곡간부가 해당된다. 저수시설 2개소, 집수시설 1개소, 자연수로 4개소, 주공군 등이 확인되었다. Ⅲ-2지역은 조사지역의 동사면 말단부와 중앙 자연수로의 동변 곡간부가 해당된다. 수혈 1기, 건물지 5동 및 주공군, 자연수로 2개소, 목주열 1개소, 구 3기 등이 확인되었다.
Ⅳ지역은 조사지역의 남단 곡간부의 저평지에 해당되며, 중앙 자연수로를 따라 동측에서 건물지 1동, 서측 저평지에서 밭이 확인되었다.
Ⅴ지역은 조사지역 동측 구릉의 서사면과 능선 일부에 해당되며, 주거지 4동, 수혈 37기, 옹관묘 1기, 구 1기 등이 확인되었다.
Ⅵ지역은 조사지역의 북측 구릉 남사면에 해당되며, 조사지역의 중앙과 서측지역에서만 유구가 밀집분포하고 있으며 주거지 11동, 수혈 23기, 주공군, 숯가마 1기, 자연수로 1개소, 토광묘 2기, 구 1기 등이 확인되었다.
한성백제기의 유구는 동쪽 구릉의 Ⅴ지역에 주거지와 수혈이 다수 분포하고 있고 이외에 북쪽 구릉의 Ⅵ지역에서는 수혈, 곡간부 동측에서는 우물이 일부 확인되고 있다. 신라후기의 유구는 구릉 사면부와 중앙 곡간부를 비롯하여 전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다만 동쪽 구릉의 Ⅴ지역의 경우 최서단부에서 극히 일부만이 분포하고 있다. 곡간부에는 주로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중앙 자연수로 서변을 따라 수리시설이 집중 조성되어 있으며 그 주변의 동서사면 말단부에는 수혈주거지와 수혈 및 고상건물지가 위치하고 있다. 또한 북측구릉 사면 Ⅵ지역 서반부에는 다수의 수혈주거지와 수혈이 밀집분포하고 있으며, 동측 구릉사면 Ⅴ지역 북반부에도 수혈 등 약간의 관련유구가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외에 중앙 자연수로 주변에도 별도의 소규모 자연수로가 형성되어 있는데 그 주변에는 수혈과 고상건물지가 조성되어 있다.
한편 곡간부의 중앙 자연수로와 사면 말단부의 소규모 자연수로 주변에는 수리시설 외에 다양한 형태의 수혈과 고상건물지를 포함하는 주공군이 산재 분포하고 있는데 이는 ‘생산 저장 소비’라는 취락의 종합적인 기능과 시기적으로 혹은 기능적으로 유기적인 관련을 맺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의 유구는 수혈주거지, 수혈, 토광묘, 석렬유구, 삼가마와 숯가마 등이 확인되고 있다. 유물은 주로 도기편, 백자 편, 평기와 편 등이 출토되었으며, 조사지역 내부와 주변에서 청동숟가락 등의 유물이 수습되고 있어 원래는 더 많은 유구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산가수동유적에서는 한성백제기인 3세기 후반∼5세기 후반, 신라후기인 6세기 후반∼7세기 후반, 조선시대인 16∼18세기 등 3시기에 걸친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고 있다. 한편 지표 및 곡간부 퇴적층에서 청동기시대 무문토기 편 및 석기 등이 수습되어 주변지역에 선사시대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