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암(金剛庵)은 조선 태종의 후비(后妃)였던 권씨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한 원당(願堂)으로 무학(無學)의 제자인 영암(玲巖)이 1412년(태종 12)에 창건하였다. 영암과 함께 건립을 주관한 사람은 권씨의 아버지인 한성판윤 권홍(權弘)과 딸인 옹주(翁主) 이씨였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사찰 이름이 옥계사로 나와 있고, 1799년(정조 23) 간행된 『범우고(梵宇攷)』와 1930년대 이병연이 찬술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옥계사라는 이름을 기록한 뒤에 지금은 금강암(金剛庵)이라 칭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조선 후기에 암행어사로 활약한 박문수(朴文秀)의 조부 박선(朴銑)이 이 사찰을 자주 찾았다고 하나 더 이상의 자세한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산 모양이 양 뿔처럼 보인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양각산(羊角山)의 정상 부근에 있다. 최근 보령댐의 조성으로 본래 있던 위치에서 호수 주변으로 이동되었다. 사찰은 극락전, 산신각, 미륵전, 요사로 구성되어 있다. 법당인 극락전은 4칸의 팔작지붕이며 그 안에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다. 산신각과 미륵전은 맞배지붕이다. 유물로는 창건 당시 건립된 비문의 파편이 전하는데, 청석에 16줄 241자만 남아 있다. 비편에는 ‘영암비구창금강암(玲岩比丘創金剛庵)’, ‘궁주권씨원당(宮主權氏願堂)’, ‘영락십년임진동계상한(永樂十年壬辰冬季上澣)’ 등과 같이 금강암의 창건 내력을 알 수 있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비편은 같은 시기에 조성된 석불과 함께 2000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