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사(大雲寺)의 창건이나 자세한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근대에 편찬된 일부 문헌에서 사찰에 대한 단편적인 사항을 수록하고 있어 참고할 수 있다. 우선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초에 간행된 『상산지(常山誌)』에는 대운사가 "건물이 수백 칸에 이르는 고려 시대의 고찰인데, 지금은 폐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1937년에 편찬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서는 폐사된 사실은 기록하지 않고 양천산(凉泉山)에 고려 시대의 고찰이 있다고만 언급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대운사는 창건이나 폐사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시대에 크게 번성했던 사찰이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대운사의 터는 양천산에 있다. 문백면 평산리 윗배티마을 서쪽에 있는 양천산의 등산로를 따라 400m 정도 올라가면 대나무밭이 밀집된 넓은 대지가 펼쳐지는데, 이곳이 대운사의 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절터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건물이 들어섰던 자리 등의 유구는 찾을 수 없고, 주변에는 기와 조각만이 산재해 있다. 가까운 곳에 우물 터가 하나 있다. 양천산이란 이름의 유래를 간직한 이 우물 터에는 근래까지 이 우물이 신앙의 대상이었음을 보여주는 여러 흔적이 남아 있다. 현재 대운사 터 대나무밭 앞쪽에는 작은 암자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