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사덕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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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이후 집터와 앞트기식돌방무덤 · 가마터 관련 복합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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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이후 집터와 앞트기식돌방무덤 · 가마터 관련 복합유적.
내용

익산사덕유적은 천호산(500m)의 지맥으로 북동쪽에 둘러싸인 산지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해발 55~60m 구릉의 남동사면에 해당한다. 남쪽에 만경강(萬頃江), 북쪽에 왕궁천이 흐르고 있으며, 서쪽이 해발 20m 내외의 논으로 펼쳐져 있어 독립구릉처럼 보인다. 발굴조사는 2003년 3월 27일부터 2005년 9월 15일까지 실시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주거지 105동, 수혈 124기, 토기가마 4기, 분묘 31기, 구 9기 등이 확인되었다. 유구는 완경사를 이루는 남서쪽 사면보다 급경사인 동쪽 사면에 밀집해서 분포하며, 범위가 북쪽에서부터 남쪽 능선의 끝까지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하나의 대규모 취락으로 볼 수 있다.

주거지는 능선과 계곡 등 유적 전면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방형계(方形系)와 장방형계(長方形系)로 나누어지는데 대부분 방형계에 속한다. 주거지의 규모는 한 변의 길이가 4m 미만, 4m 이상~7m 미만, 7m 이상으로 구분되며, 각 능선별로 7m 이상의 대형주거지를 중심으로 군집양상을 보이고 있다. 내부시설로는 노지와 배연시설, 벽구, 주공 등이 확인된다.

노지는 대부분 부뚜막식으로 11자형을 이룬다. 배연시설은 일정한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배연방법에 따라 'l'자형 'ㄱ'자형, 터널형태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ㄱ'자형은 배연관 꺾임의 횟수에 따라 'ㄱ'자형 1과 'ㄱ'자형 2로 나누어진다. 이는 주거지 내 노지의 위치 및 배연방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발형토기(鉢形土器), 호형토기(壺形土器), 장란형토기(長卵形土器), 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 증(甑), 주구토기, 파수부토기, 대옹, 옹형토기(甕形土器), 자배기, 병형토기, 완, 삼족토기(三足土器), 고배, 개, 배, 컵형토기, 경배, 두형토기, 연통형토제품(煙筒形土製品), 연가(煙家), 방추차, 용범, 내박자, 도지미, 지석, 석촉, 철촉, 철부, 철겸, 도자, 철정 등이 출토되었다.

수혈(竪穴)은 분포상태나 유구 수 등 주거지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원형 · 방형 · 장방형 · 부정형 등 다양한 형태들이 확인되었다. 2·88호 수혈은 바닥면에서 30㎝ 정도 올라온 지점의 벽면에 대칭되는 벽공(壁孔)을 설치하였다. 70호 수혈은 배연시설까지 갖추었다. 방형수혈 내부에서는 일상용 토기가 다량 출토되었고, 부뚜막식 노지의 형태들이 일부 확인된다는 점에서 주거지와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주고 있다. 주거지와 수혈은 분포양상과 출토유물을 통해 단계마다 동시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조성 시기는 4~7세기경으로 판단된다.

토기가마는 Ⅰ구역 남서쪽에서 3기, Ⅱ구역 남동쪽에서 1기가 조사되었다. 전면작업장은 장타원형, 연소실과 소성실은 주형(舟形)을 이룬다. 3호는 소성실 끝에서 거의 수직으로 빠져나가는 연도부가 확인되었다. 연소실과 소성실의 경사도는 8~15°, 전체규모는 길이 660~840㎝, 너비 120~178㎝이다. 유물은 가마 내부에서 토기 편과 도지미가 출토되었다. 원삼국시대에서 삼국시대에 걸쳐 조영된 가마이다.

분묘는 대부분 북동쪽에 분포하며, 횡혈식석실묘 2기, 횡구식석실묘 24기, 수혈식석곽묘 2기, 옹관묘 3기 등이 조사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장축방향이 등고선과 직교하며, 주구가 설치된 대형 석실묘가 경사면 위쪽에, 소형 석곽묘나 옹관묘는 경사면 아래쪽에 분포한다. 사덕유적의 분묘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횡구식석실묘이다. 경사면 아래쪽에 입구를 두고 있으며, 시상은 작은 할석을 깐 것과 기반토를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나누어진다. 유물은 병(甁), 완(盌), 개(蓋) 등이 출토되었다. 분묘는 사덕유적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므로 이전 단계의 매장시설에 대한 존재 파악이 시기에 따른 공간분할을 살펴보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구(溝)는 유적의 하단부에 조성되었고, 주거지 분포권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는 공통점을 보인다. 유물은 고배, 호형토기, 옹형토기, 대옹, 자배기, 병형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익산사덕유적의 취락구조는 주거지, 수혈, 토기가마, 분묘, 구 등이 서로 상관성을 가지면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사덕유적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시간적 전개과정에 따른 토착세력과 백제문화의 유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가 보존지역으로 설정되어 한정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대규모 복합취락유적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익산 사덕유적Ⅰ』(이영철·진만강, 호남문화재연구원, 2007)
『익산 사덕유적Ⅱ: 진안 구룡리유적』(이영철·진만강, 호남문화재연구원, 2007)
집필자
권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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