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정 ()

목차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국채보상부인회를 조직하는 등 남편 아준과 함께 반일운동 및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876년(고종 13)
사망 연도
1935년 5월 13일
본관
우봉(牛峰) |평동(平東)
출생지
서울
관련 사건
안현부인상점 개업| 공진회 탄압 사건| 국채보상운동| 유학생 단지 사건 의연금 모집| 제국신문 폐간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국채보상부인회를 조직하는 등 남편 아준과 함께 반일운동 및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우봉(牛峰) 또는 평동(平東). 고종의 헤이그 밀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이준(李儁)의 후처 또는 첩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최초의 ‘부인상점(婦人商店)’을 개업해 여성의 독자적 생활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으며, 이준의 정치개혁운동과 궤를 같이하며 반일운동 및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하였다.

생애

1876년(고종 13)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7세 때 형조판서 김병시(金炳始)의 소개로 34세의 이준을 만나 결혼하였다. 이준은 함경남도 북청 출신으로 17세인 1876년에 서울로 와서 김병시의 집에서 묵었다. 고향에서 북청 유지 주만복의 딸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둔 바가 있었는데, 이일정과 결혼 당시 전처와 사별 또는 이혼하였는지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일정은 스스로를 재취(再娶)라 말하였으나 당시 언론은 이일정을 가리켜 '이준의 부실(副室)'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1935년 5월 13일 59세를 일기로 서울 종로 누하동(현 효자동)에서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이일정은 1905년 봄 서울 안현(지금 안국동 일대)에 한국 최초의 '부인상점'을 개업하였다. 개화의 시대라고 하여도 상업을 천시하고 여성의 바깥 외출을 금하는 풍조가 남아 있던 시기였다. 남편 이준이 독립협회, 대한협동회(大韓協同會), 공진회(共進會) 활동 등 반일개혁운동을 추진하면서 투옥당하기도 하고 유배도 겪는 동안, 남편 뒷바라지를 하는 한편 아이들을 돌보며 집안 살림을 꾸려가야 하는 상황에 있었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여성은 반드시 독자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놓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였고, 안현동 11통 16호에 부인상점을 열었다. 전면을 유리로 장식한 현대적인 모습의 상점이었으며, 바늘과 실 · 단추 · 머릿기름 · 분 · 족집게 · 비누 등 생활 필수품과 살림살이를 팔았다. 주인이 여자여서 양반층 여성들의 출입도 자유로웠다. 여자가 장사를 한다는 세상의 손가락질도 있었으나, 안현 부인상점은 1910년경 폐지될 때까지 5년여 간 유지되었다.

기독교인이면서 신교육을 받았던 이일정은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언론을 통해 자신의 시국인식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1904년 12월에 공진회 회장이었던 이준이 정부 대신들을 비판하다 체포당하자 대책모임에 나가 연설을 하고 『황성신문』에 투고하여 공진회 탄압의 부당성을 알렸다. 1907년 2월에는 일진회(一進會)로부터 학비를 조달받지 못해 단지(斷指)동맹을 한 일본유학생들의 소식을 듣고 『대한매일신보』에 국권회복의 목적을 위해 유학생들을 도와야한다는 투고문을 싣고 기부금을 보냈다. 1907년에 전국적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자 서울 종로 대안동 고 판서(故判書) 김규홍(金圭弘)의 집에 임시사무소를 두고 국채보상부인회를 조직하였다. 1907년 9월에는 『제국신문』의 폐간 소식을 듣고 신문 폐간은 곧 '이천만인의 귀와 눈이 없어지는 것'라는 투고문을 싣기도 하였다.

1907년 4월 헤이그로 파견된 이준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이일정은 광동학교 교감 일을 몇 달 만에 접고, 대외활동도 줄였다. 3년 후인 1910년에는 남편의 시신이라도 찾고자 중국 하얼빈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헤맸지만, 성과 없이 혼자 돌아왔다. 이때 함께 여행을 하였던 이준 전처의 아들인 이종승(李鍾乘)은 중국으로 가서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절강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 상해 임시정부의 동로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북간도에서 항일무장운동을 전개하였던 이용(李鏞)이 바로 이종승이다.

참고문헌

「근대계몽기 첩 출신 계몽운동가들: 신소당과 이일정」(홍인숙, 『이화어문논집』 40, 이화여대 한국어문학연구소, 2016)
「부인상점으로 여성자립실천: 최초의 부인상점 주인 이일정」(최은희, 『추계 최은희 전집 4: 한국개화여성열전』, 추계최은희문화사업회, 1991)
「부인상점」(『황성신문』, 1905.6.16)
「해아밀사(海牙密使) 이준씨 미망인 이일정여사 방문기」(『신동아』, 1932.2)
집필자
박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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