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론에서 환율 제도(換率制度)는 변동 환율제(變動換率制)와 고정 환율제(固定換率制) 두 가지가 있다. 변동 환율제는 외환 시장에서 외환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 환율이 결정되는 것을 의미하고, 고정 환율제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수준에서 자국의 환율을 고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이 두 환율 제도는 환율을 결정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한 나라에는 하나의 기준 환율(基準換率)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론적 기반은 같다.
그러나 현실 역사에서는 이 두 환율 제도로 모든 나라의 환율 제도를 설명할 수 없다. 복수 환율제를 채택한 1950년대 한국 경제가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1950년대 한국 경제에서 환율은 다양한 환율이 존재했는데, 이것을 환율 결정 방식에 근거하여 구분하면, 두 개의 환율 그룹으로 범주화할 수 있다. 하나는 시장환율(市場換率)이다. 이것은 외환 시장에서 외환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데, 수출을 통해 획득한 외환은 정부의 승인 하에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협정환율(協定換率)이다. 이 환율은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협의하여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 두 환율은 환율 결정 방식의 차이에 근거하여 환율 수준에서도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였는데, 1950년대 전반기에는 시장환율이 협정환율보다 3배 이상 높았고, 1950년대 후반기에는 약 2배의 환율 차이가 났다.
1950년대 한국 경제에서 협정환율이 존재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국 정부가 결정한 공정환율이 시장환율보다 훨씬 낮았다는 점이다. 이승만 정부가 공정환율을 낮게 유지한 것은 이 환율을 정부 간의 거래에 적용함으로써 외환 수입(收入)을 늘리고, 전후 경제 재건과 부흥에 필요한 시설과 원료 등을 낮은 가격에 공급하여 민간 기업의 경제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하나는 미국 정부에서 공급하는 외환이 매우 많았다는 점이다. 1952~1960년 동안의 한국의 외환 수입액(收入額)은 총 31억 24백만 달러였는데, 이 중에서 수출을 통해 획득한 외환은 2억 24백만 달러로 7%에 불과하였고, 나머지의 대부분은 미국 정부가 공급한 것이었다. 가령 같은 기간에 미국이 제공한 원조는 22억 44백만 달러로 전체의 72%를 차지하였고, 나머지 21%인 6억 56백만 달러는 유엔군 대여금 상환불과 같이 주한 유엔군(미군)에게 한국 통화로 대여해 준 것을 달러로 상환받은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결정한 공정환율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미국 정부는 더 큰 달러를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공정환율보다 높게 책정한 별도의 환율을 결정하여 유엔군 대여금을 상환할 때 적용하려고 했다. 마찬가지로 달러 표시의 원조자금에 상응하는 한국 통화 적립금인 대충자금(對充資金) 규모를 결정하는 것도 환율이었는데, 경제 안정을 대한 원조의 목표로 상정했던 미국 정부는 공정환율보다 높은 대충자금 환율을 적용하여 대충자금의 규모를 확대하고자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공정환율, 대충자금 환율, 그리고 유엔군 대여금 상환에 적용하는 환율을 협의하여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