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자동차공업진흥계획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정부는 장기 진흥계획에 의한 자동차 산업 육성의 목표를 1980년대까지 국산 차 50만 대 생산, 그리고 이를 토대로 1억 5천만 달러의 자동차 수출로 잡았다. 목표 달성을 위해 동 계획이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국산 완성 차 개발과 공장 생산 규모 지정이었다. 관련한 주요 사항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1975년까지 소형차(1,500cc 이하)의 국산 환율을 95%까지 달성하고, 이를 위해 관련 자본과 기술 도입을 정부의 적극 지원 하에 촉진하도록 한다. 자본 · 기술 도입의 형태는 외국 자본의 합작이나 신설 없이 기존 공장을 중심으로 육성한다는 원칙도 정해졌다. 생산 대상이 되는 1,500cc 이하의 소형차는 비용 2,000달러 이하의 독자 모델로 하며, 1975년까지 시장에 내놓고 이를 국민차로 지정하여 1976년 이후 수요의 80%를 담당하게 한다. 자동차 생산 공장 규모는 생산 체제의 합리성을 최대한 고민하여 생산을 담당하는 각 기업이 연간 5만 대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차제 및 엔진 공장을 건설하며 이들 공장은 창원 기계 공업 단지에 집중시켜 기반 등의 비용을 절감한다. 부품 공장은 완성 차 공장과 분리를 원칙으로 하여 '1공장 1부품 생산'의 전문화를 꾀한다. 이를 통해 1981년까지 1억 5천만 달러의 수출을 달성한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장기 진흥 계획의 원만한 달성을 위해 7개 정부 지원 원칙도 제시했다. 수입 자동차로부터 국내 시장 보호, 국내 디자인 차에 대한 세금 감면, 효율성을 위한 관련 기업들의 수직적 통합 촉진, 우호적인 금융 환경 조성, 국산 차 모델에 대한 시장 보장의 행정적 선언 등이었다.
1973년 6월 완성된 상공부 장기자동차공업진흥계획안은 장관 결재를 거쳐 7월 4일 국무총리 재가를 얻었다. 정부는 7월 12일, 이 장기 진흥계획을 당시 완성자동차를 생산하던 3개 기업, 즉 현대자동차, 신진자동차, 아시아자동차, 기아산업의 4사에 전달하여 동 계획대로 실행하기 위한 계획서를 8월까지 제출하도록 하였다. 정부 계획에 대해 해당 기업들이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를 보고하도록 한 것이다. 이후 정부는 자동차 기업들이 제출한 실행계획서를 검토하고 조율을 통해 1974년 1월 「장기자동차공업진흥계획-한국형소형승용차의 양산화Ⅰ」을 최종 결정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장기자동차공업진흥계획은 국산 자동차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의 「포니(PONY)」와 기아산업의 「브리사(Brisa)」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이전 단순 조립에 의존하던 자동차산업을 도약시켜 '한국형 자동차 산업 건설'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