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제철소는 1985~1992년에 전라남도 광양시에 건설된 일관 제철소이다. 중화학 공업화 정책의 일환으로 모색된 제2 종합 제철 사업은 사업 주체를 포항제철, 입지를 광양으로 삼았다.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은 4 차례에 걸쳐 전개되었으며, 이를 통해 연간 1,140만 톤의 생산 능력이 확보되었다.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이 마무리된 1992년에 포항제철은 세계 3위의 철강 업체로 떠올랐다.
광양제철소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부지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공장을 ‘I자형’으로 배치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광양제철소는 주1 공정에서 주2 공정에 이르는 거리가 1.5㎞에 불과해 비슷한 규모의 제철소로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생산 라인을 보유할 수 있었다. 또한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은 당시에 새롭게 개발된 시설들이 제철소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광양제철소의 주8(용광로)는 영국의 데이비 맥키, 주9는 오스트리아의 푀스트, 연주 설비는 독일의 만네스만 데마그, 열연 설비는 일본의 미츠비시 중공업에서 들여왔다.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은 1기(19851987년), 2기(19861988년), 3기(19881990년), 4기(19911992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13기의 연간 생산 능력은 270만 톤, 4기에는 330만 톤이었다. 포항제철은 포항 940만 톤과 광양 1,140만 톤을 포함하여 총 2,080만 톤의 생산 능력을 갖추었고, 19901992년에 신일본제철과 유지노사실로에 이어 세계 3위의 철강업체로 부상했다. 또한 포항제철소는 열연, 주5, 주6, 주7, 스테인리스 등의 다품종 생산 체제로, 광양제철소는 열연과 냉연에 집중된 소품종 대량 생산 체제로 특성화되었다.
광양제철소의 공사 단축 기간은 1~3개월로서 포항제철소 건설 사업에 비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약 300만 톤의 제철소를 건설하는 데 소요되는 기간은 포항 3기의 28개월, 포항 4기의 25개월이었으나 광양 2기 및 4기의 경우에는 21개월 정도로 단축되었다.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 전체의 톤당 건설 비용은 706달러, 정부 지원 사업을 포함할 경우에는 752달러로 집계되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세계 평균에 해당하는 1,500달러의 약 1/2에 불과하다.
한국의 철강 산업은 1985~1992년에 연평균 15.3%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급속한 성장을 경험했다. 같은 기간에 세계 전체의 철강 생산량은 정체 상태에 있었고 개발 도상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7.8%이었다. 또한 1985년을 계기로 철강재 사용량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건설업을 넘어서며 우리나라의 철강 산업은 질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한 발전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1996~1999년에는 307만 톤 규모의 확장 공사가 추진되었고, 현재 광양제철소는 5개의 고로를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