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중공업 ()

산업
단체
1948~1962년에, 한국의 철강산업을 주도한 공기업.
단체
설립 시기
1948년 6월 1일
해체 시기
1962년 11월 10일
소재지
인천
전신
종연공업
후신
인천중공업, 인천제철, 현대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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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대한중공업은 1948~1962년에 한국의 철강 산업을 주도한 공기업이다. 대한중공업은 1956년에 제강 공장을, 1959~1960년에 분괴 공장과 압연 공장을 준공했으며, 196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강괴의 98.2%와 압연 제품의 46.9%를 생산했다. 대한중공업은 한국 정부가 종합제철사업을 추진하는 매개체로 활용되었으며, 이후에 인천중공업과 인천제철을 거쳐 오늘날 현대제철로 이어지고 있다.

정의
1948~1962년에, 한국의 철강산업을 주도한 공기업.
변천 및 현황

1938년 1월에 조선이연금속(朝鮮理硏金屬)은 회전로에 의한 입철 생산을 위해 인천공장을 설립했고, 1942년 12월에는 종연실업(鐘淵實業)에 의해 인수되어 종연공업인천공장으로 거듭났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에는 귀속 재산 기업체로 관리되기 시작했다. 1948년 6월에는 대한중공업공사로 개칭되면서 상공부가 직접 관할하는 공장이 되었고, 1951년 6월에는 국영 기업체로 지정되었다. 대한중공업공사는 1962년 11월에 인천중공업(주)으로 회사의 이름을 변경했으며, 1966년 8월에 민영화의 절차을 밟았다. 이와 별도로 1964년 10월에는 인천제철이 설립되었고, 1970년 4월에는 인천제철과 인천중공업이 합병되었으며, 인천제철은 1978년 6월에 현대그룹으로 편입되었다. 인천제철은 2001년 7월에 INI스틸로 회사명을 바꾸었고, 2006년 3월에 현대제철로 다시 바꾸었다.

주요 활동

1953년 4월에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후의 시설 복구에 필요한 철강재 생산을 주문했고, 대한중공업은 평로의 도입과 압연 시설의 보완을 중심으로 하는 사업 계획서를 제출했다. 1954년 9월에 한국 정부는 서독의 데마그(Demag)를 설비 공급 업체로 선택했으며, 대한중공업은 데마그와 50톤급의 평로 설비에 대한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대한중공업의 제강공장은 1956년 10월에 준공되어 11월부터 가동되었지만, 원료의 품질이 보장되지 않아 설비가 고장나는 바람에 2주 만에 조업이 중단되었다. 그 후 노체 내열 보조재를 교체하는 등의 보완 조치를 통해 1957년 2월에 조업을 재개했으며, 대한중공업의 강괴 생산량은 1957년의 1만 7,028톤에서 1961년에 4만 6,652톤으로 증가했다.

1956년 4월부터는 데마그와의 설비 도입 계약을 바탕으로 분괴 공장, 중형 압연 공장, 박판 압연 공장을 건설하는 작업도 추진되었다. 분괴 및 압연 공장의 건설은 자금 확보가 늦어지는 바람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가 제강 공장에서 생산된 강괴를 처리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한중공업은 1959년 12월에 분괴 공장과 중형 압연 공장을, 1960년 4월에 박판 압연 공장을 준공했으며, 이에 따라 1959년에 1,461톤에 불과했던 압연 제품 생산량은 1961년에 5만 2,362톤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제강 공장이 완공된 후 압연 공장 건설 사업이 추진되어 대한중공업이 최종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데에는 2~3년이 추가로 소요되었다.

대한중공업은 한국 정부가 종합 제철 사업을 추진하는 매개체로 작용하기도 했다. 1958년 8월에 수립된 ‘종합 제철 공장 건설 5개년 계획’은 대한중공업의 주도로 1961~1965년에 연간 20만 톤 규모의 일관 제철소를 강원도(현,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에 건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어 1961년 3월에는 철광산 개발과 일관 제철소 건설을 위한 ‘철광 종합 개발 계획’이 수립되었는데, 일관 제철소의 경우에는 대한중공업이 동해안의 적절한 지역에 연간 25만 톤 규모로 추진하기로 계획되었다.

의의 및 평가

한국의 철강 생산량은 1954년에 2만 3,790톤에 불과했지만 1960년에는 16만 1,760톤으로 증가함으로써 해방 이전의 상태를 회복했다. 이러한 변화에는 대규모 제강 공장과 압연 공장을 처음으로 운영했던 대한중공업의 역할이 컸다. 1960년을 기준으로 대한중공업은 강괴의 98.2%와 압연 제품의 46.9%를 생산했다.

참고문헌

단행본

백덕현, 『근대 한국 철강산업 성장사』 (한국철강신문, 2007)
인천제철, 『인천제철: 그 성장의 35년과 기업문화』 (1990)

논문

송성수, 「한국 철강산업의 기술능력 발전과정」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인터넷 자료

현대제철(https://www.hyundai-ste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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