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응 초상화(李德應 肖像畵)
연재 송병선과 우암 송시열의 학풍을 계승한 근대 유학자이자 충신으로 간재 전우와도 교유하였다. 벼슬은 1900년(광무 4) 정월 4일 장릉(章陵) 참봉에 제수, 판임관에 승서되어 궁내부에서 『육전조례』 출간에 참여하였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일본에게 국권을 강탈당하자 비분강개하여 낙향하였고 김제를 거쳐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개화동에 터를 잡아 화양도원을 열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19년 고종황제의 붕어 소식을 듣고 화양산에 올라 3년 동안 백립과 상복을 갖춰 입고 망곡하였다. 이후 기울어가는 국운을 만회하고자 전라북도의 화양봉에 황단을 세웠고, 1932년 유림의(儒林議)에서 전라북도 선암봉, 제천봉, 천왕왕, 충남의 두문봉, 파초봉, 유제봉 등에도 황단을 세우고, 옥황상제, 공자, 고종황제 등 3위를 천지인(天地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