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5년(철종 6) 이하의 9대손 이창섭(李昶燮)이 편집·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후손 이기용(李基容)·이용(李鎔)·이창섭의 발문이 있다.
8권 4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 도서·국사편찬위원회·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시 390수, 권3에 소(疏) 9편, 계(啓) 13편, 권4에 서(書) 44편, 권5에 서(序) 12편, 기(記) 9편, 권6에 발(跋) 12편, 잠(箴) 9편, 명(銘) 2편, 송(頌) 1편, 찬(贊) 1편, 설(說) 4편, 권7에 설 4편, 논(論) 2편, 전(傳) 2편, 잡저 11편, 권8에 상량문 1편, 제문 7편, 축문 14편, 묘갈명 3편, 부록으로 행장·묘갈명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단순한 음풍영월이 아닌 학구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의구비(義狗碑)」·「의우도(義牛圖)」 등은 설화를 주제로 읊은 것이다. 그리고 「냉산기문시(冷山記聞詩)」는 유배지인 삼강(三江)에서 군주를 연모하며 방면의 은전을 기다리는 애절한 시정이 담긴 작품이다.
소와 계에는 송시열(宋時烈)의 기해예설을 반박하면서 송시열을 탄핵한 내용과 환로(宦路)에 있던 사람들의 비행을 지적하며 파직을 상소하는 내용 등 언로의 중요성과 공직자의 기강을 강조한 내용이 많다.
서(書)의 「상허영상별지(上許領相別紙)」에는 현사(縣舍)의 개축 사실을 담고 있어 당시 현사의 규모를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그 개축 역사에 왜인 목수를 동원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어 당시 일본과의 교역 관계를 알 수 있다.
잠·명·설은 삼강 유배 중에 지은 것들로, 저자의 학문적 조예와 객회가 잘 나타나 있다. 이 가운데 「삼불천설(三不天說)」은 인간의 운명은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에 달려 있다는 요지의 글이다. 이 글은 사람이 악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며 흉년이 드는 이유는 하늘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독향당편설(讀鄕黨篇說)」에서는 『논어』 향당편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이 밖에 「정이방백문(呈李方伯文)」은 선비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 글로서, 벼슬 없이 위도(衛道)의 책임을 맡은 것이 선비이고, 또한 지방의 교화의 책임을 맡은 것이 감사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