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 3책. 목판본. 1898년 그의 아들인 병수(秉秀)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도화(金道和)의 서문과 권말에 김흥락(金興洛) 등의 발문이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은 시 123수, 권2는 소 2편, 권3·4는 서(書) 102편, 권5는 잡저 3편, 권6은 서(序) 2편, 기 3편, 발 4편, 명 2편, 축문 7편, 권7은 제문 17편, 유사 4편, 묘표 1편, 권8은 부록으로 만사 27편, 애사 1편, 뇌문 1편, 제문 8편, 행장 1편, 묘갈명 1편, 묘지명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 2편은 사직소이다. 정언을 사직하며 올린 소에서는 혼란에 빠진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임금에게 있으며, 인재를 얻어 적소에 임명해야 함을 설명하였다. 서(書)에는 스승 유치명(柳致明)과 당시의 정승·판서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상당수 있다.
잡저의 「대학강록(大學講錄)」은 1867년 민심을 회복하고, 사교(기독교)로부터 전통을 지키며, 열강으로부터의 자구책을 도모하기 위해 중앙에서 사서 등의 책을 각 고을마다 강독하게 했다는 소서(小序)가 붙어 있다. 이어 이 취지에 따라 『대학』의 서문에서 마지막 장까지, 때로는 소주(小註)까지 들어가며 강론한 내용을 기재하였다.
「사서차의(四書箚疑)」·「심경의의(心經疑義)」는 사서와 『심경』의 의문됨을 포괄적으로 다루었다. 이밖에 발 가운데 「경서열성어제장첩후(經書列聖御製糚帖後)」는 그가 종부시주부로 재직하며, 종부시에 전해오는 태조로부터 경종까지의 어필 8권 가운데에서 몇 점을 모사한 기록이다.
유사의 「배씨이충육효행록(裵氏二忠六孝行錄)」은 경상북도 청도에 사는 배원우(裵元佑) 집안의 충효행적을 적은 것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청도 일대를 지킨 내용과 함께 자손들의 효행을 적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