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내길(來吉), 호는 연포(蓮浦). 가림(嘉林: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증 승지 구하(具厦), 어머니는 광산김씨(光山金氏)로 현감 김동준(金東準)의 딸이며, 허목(許穆)의 문인이다.
1675년(숙종 1)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광릉참봉(光陵參奉)을 지내고, 장흥고봉사(長興庫奉事)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숙종이 등극하면서 호패법(戶牌法)을 실시하고 서얼(庶蘖)들을 모두 군적(軍籍)에 충정(充定)하려 하자 강력한 반대 상소문을 올렸다가 중도에서 그쳐지고 말았다.
그러한 그의 강직한 성격은 간혹 그의 경륜과 재주에 탄복하여 상소문의 대초(代草)를 부탁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마지막에 그 초고(草稿)가 완성되면 시세에 저촉되는 말이 많아 번번히 올려지지 않은 데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허목은 산림(山林)으로 천거되어 벼슬에 나가면서 그를 맨 먼저 천거할 정도로 덕이 있었다. 호조참판에 증직되었으며, 저서로는 『연포당유고(蓮浦堂遺稿)』 1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