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집 ()

허채의 금주집 중 표지
허채의 금주집 중 표지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허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41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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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허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41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41년 허채의 손자 허섭(許涉)이 편집·간행하였다. 서문·발문은 없다.

서지적 사항

15권 8책. 목판본.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2에 시 241수, 권3∼9에 서(書) 353편, 권10·11에 잡저 18편, 권12에 서(序) 19편, 기 15편, 권13에 발 20편, 자사(字辭) 3편, 잠 8편, 명 2편, 상량문 2편, 축문 6편, 뇌사(誄辭) 4편, 제문 19편, 권14에 묘지명 8편, 묘갈명 12편, 권15에 행장 10편, 전(傳)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는 문집의 반을 넘는 분량으로 별지에는 예설·성리설·경전 등의 내용이 폭넓게 언급되어 있다. 이온우(李溫雨)에게 답한 글에서는 너무 쉽게 성리설만을 연구하려는 당시 학자들의 태도를 반박하였다. 그 중, 신성일(申聖日)과의 문목은 권8의 반을 넘는 분량으로 『중용』을 집중적으로 논급하였다.

잡저 중에서 「이기선후유무변(理氣先後有無辨)」은 이기를 “이(理)가 앞서고 기(氣)가 뒤따른다.”고 보는 이론에 대해 주자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논박해, 이와 기에는 선후가 있을 수 없음을 변파한 것이다.

「독춘추(讀春秋)」는 『춘추』 사전(四傳)의 장단점을 논하면서 『춘추』 중 경(經)에 대한 새로운 범례 네 가지를 제시한 것이다. 「독결송장보(讀決訟場補)」는 제자들과의 문목 중 주로 상례(喪禮) 부분을 발췌해 모은 것이다.

「독이한주부서대평답첩후(讀李寒洲附書大坪答帖後)」는 이진상(李震相)과 유치명(柳致明) 사이에 마지막으로 오간 성리설 의목(疑目)에 자신의 의견을 첨부한 것이다. 특히, 명덕(明德)·심(心)에 관한 부분이 많다. 영남학계에 파문을 일으킨 이진상의 학설에 다시 반론을 제시한 것으로, 유학사에 한 지류를 이룬다.

「주산서당학칙(珠山書堂學則)」은 주자의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를 모방하고, 옛날 성현들의 법언(法言) 중에서 학문수업과 진덕(進德)에 요체가 될 만한 문구를 모아 학칙을 작성한 것이다.

「옥석설증사중제군(玉石說贈社中諸君)」은 제자들에게 학문하는 절차를 언급한 것으로서 옥석을 갈고 닦지 않으면 그릇과 문채를 이루지 못하듯이, 사람도 자신의 재주만 믿지 말고 깊이 생각하고 힘써 실천할 것을 당부하였다. 행장의 「만구선생유사총서(晩求先生遺事總敍)」는 김진구(金鎭龜)의 평생 이력과 행적을 평이하게 서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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