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남 호성공신교서 및 관련 고문서(金應南 扈聖功臣敎書 및 關聯 古文書)
전란 중에 김응남은 병조판서, 부제학, 대사헌, 예조판서,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한 뒤 1598년에 병사하였다. 따라서 1604년(선조 37)에 내려진 호성공신교서와 1753년(영조 29)에 내려진 증시교지는 모두 김응남의 사후에 발급된 것이다. 김응남의 본관은 원주(原州)이고, 자는 중숙(重叔), 호는 두암(斗巖)이다. 1567년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68년 증광 문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발발한 전쟁이 끝난 뒤 조정에서 논공행상을 시행하였고, 1604년(선조 37) 공로에 따라 호성공신(扈聖功臣), 선무공신(宣武功臣), 청난공신(淸難功臣)을 선정하였다. 이 가운데 호성공신은 전쟁발발 초기에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했던 이들 가운데 공로가 큰 86인이 선정되었다. 1등에는 이항복, 정곤수, 2등에는 신성군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