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金基德)
1935년 삼천리사(三千里社) 기자가 방문하여 재산관(財産觀)을 묻자 “돈이란 1,000∼2,000원이나 1∼2만 원일 때에는 개인재산이지만, 100만 원이나 1000만 원이 되면 사회의 공재(公財)를 관리하는 데 불과하며, 자손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불찬성이며, 교육과 인격을 줄 일이다.”라고 하였다 한다. 고향인 청진에 해산물무역회사를 설립하였고, 북만주에 목재회사, 다롄[大連]에 곡물무역회사를 설립했으며, 두만강과 압록강 연안에도 많은 제재소를 소유하였다. 만주에 곡물, 특히 대두와 목재를 해외로 수출하는 무역을 하였으나 재산의 대부분을 토지에 투자했다. 자수성가형 근검절약의 상인형(商人型)이라기보다는 모험적이고 투기적인 기업인이었다. 청진에 청덕학교(淸德學校)와 청덕전기학교(淸德電氣學校)를, 서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