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방(都房)
그러나 삼별초가 조직되자, 공적 임무는 삼별초가 맡게 되고, 도방은 오직 사적 임무인 숙위만을 맡게 되었다. 명칭에 있어서도 공적인 군사활동을 할 때는 가병 또는 사병이라 불렸다. 그러나 사적인 위병일 때는 원래의 사칭(私稱)인 도방이라 불렸으나, 이것도 삼별초가 조직된 뒤 가병이니 사병이니 하는 말은 없어지고 오직 도방으로만 불리게 되었다. 최항(崔沆) 때 이르러서는 분번제(分番制)가 더욱 확대되어 36번이 되었다. 그 병력은 전대(前代)의 것을 계승하고, 거기에 다시 그가 집권 전부터 거느려 오던 사병을 합해 편성한 것으로 보인다. 36번도방의 편성시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단지, 1257년 최항이 죽자 최양백(崔良伯)이 이를 비밀에 붙이고 선인열(宣仁烈)과 더불어 최항의 유언대로 최의(崔竩)를 받들기로 하여, 문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