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균한(徐均漢)
이때 서균한이 맡은 역할은 김준의 명을 받아 삼별초를 사청(射廳)에 불러 모으고, 거짓으로 “최의가 이미 죽었다”고 하여 삼별초를 결집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공을 세운 결과, 같은 해 7월 차송우(車松祐) 등과 더불어 원종공신(原從功臣) 성격의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 同力輔佐功臣)에 책봉되었다. 이후 김준정권기의 관력(官歷)은 알 수 없다. 1270년(원종 11) 5월 14일(癸丑) 무신집권자 임유무(林惟茂)가 피살된 후 개경환도(開京還都)가 결정되고 삼별초가 해산되는 와중에서 7월 1일(己亥) 상장군(上將軍)으로서 고려에 주둔해 있던 몽골의 제왕(諸王) 쿠림치[頭輦哥, 忽林赤]의 명령을 받아 강화창(江華倉)을 열어 곡식을 군신(群臣)과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1258년 7월 위사보좌공신 19인(혹은 20인)에 포함되었고, 12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