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본사상(民本思想)
특히, 조선의 세종은 예악 정치를 실현하고자 <여민락 與民樂>이라는 노래를 제작,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기고자 했으며, 훈민정음을 반포해 백성들을 일깨우고자 했다는 점에서 위민 의식이 충만한 민본사상의 실천자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역사 속에는 민본사상에 의한 정치적 이론과 실천이 그 축을 이루며 면면히 이어와 민족적 기반이 되었다. 그것은 민생에 관한 논의요, 민심에 따른 논리이며, 위민의 정치 행사인 것이었다. 유교의 정명사상(正名思想)에서, 그 정명의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민본사상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민본사상에 입각하여 통치한 시대는 평화가, 민본사상을 잊고 힘으로 지배한 시대는 혼란이 있었다.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학자 이황(李滉)·이이(李珥)·조헌(趙憲)·정약용(丁若鏞)의 민본사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