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시량(裵時亮)
1638년 숙천부사, 이어 경상좌도우후를 거쳐 양주목사로 있을 때 영국원종공신(寧國原從功臣)에 녹훈되었고, 1645년 공청도병마절도사로 삼았다. 공청병사로 재직 중이던 1646년, 공청도(公淸道: 지금의 충청도) 이산(尼山) 등지에서 안익신(安益信) 등이 주도하여 변란이 일어났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다는 지적에 따라 삭직되었다. 1649년(효종 즉위)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복직되었고, 1651년(효종 2) 경기도수군절도사·포도대장을 거쳐, 1657년(효종 8) 전라도병마절도사로 재직 중 장수현(長水縣)에서 죽었다. 무인이면서도 양반의 법도를 지키고 행동을 절제하였으며, 스스로 욕심을 버리고 근신하여 여러 고을을 다스리면서도 부정으로 재산을 축적하는 일이 없었다.